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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송 [Sin Ko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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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문학 > 평론가
9분류 인물
집필자 김은정
출생일1907년
사망일미상
출생지경남 울주군 언양
정의
해방 전에는 아동문학가로 활동했으나, 월북 후에는 희곡작가이자 평론가로 활동하였다.
내용
본명은 신말찬(申末贊). 고송(孤松 또는 鼓頌)은 호이고, 신찬(申贊)이라는 필명도 썼다. 1907년 경남 울주군 언양에서 태어났다.
1924년 『어린이』 5월호에 <밧브든 일주간>이라는 일기문을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 후 <기쁨>, <굴렁쇠> 등에 많은 동요시를 발표하였으며, 1927년 『어린이』 2월호에 아동극 <꾀바른 토끼>를 발표하는 등 아동문학가로서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1928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대구보통학교의 교사가 되었지만, 1930년 봄 ‘사상경향 불온’을 이유로 결국 교직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그는 본격적인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에 뛰어들어, 1930년 11월 사범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이상춘(李相春), 이갑기(李甲基)와 함께 대구에서 극단 가두극장(街頭劇場)을 조직하였다.
1931년 11월에 결성된 일본의 동지사의 편집부에 소속되어 활동하다가, 1932년 2월 동지사가 코프(KOPF, 일본프롤레타리아문화연맹) 산하 코프조선협의회로 해소되면서 그 기관지 『우리동무』의 편집에 종사하게 된다. 귀국 후 서울에서 이상춘, 강호(姜湖) 등과 함께 잡지 『연극운동』을 발간하는 한편, 극단 메가폰과 신건설을 조직하는 등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1932년 8월 30일 『우리동무』 국내 배포 건으로 구속되어 만 3년의 형기를 마치고 1935년 9월에 출옥하였다. 이때부터 1945년까지는 오케이 그랜드쇼(나중에 ‘조선악극단’으로 개칭)라는 악극단에서 생계유지를 위해 활동하였으며 일제 말에는 친일연극에도 가담하였다.
해방 후에 그는 1945년 9월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과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의 중앙집행위원, 그리고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의 연극부문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는 등 급진적인 프롤레타리아 연극운동의 핵심역할을 담당하였다. 1945년 12월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이 조선연극동맹으로 흡수‧재편되자, 이에 반기를 들고 1946년 4월 월북하여 북조선연극동맹의 부위원장 직책을 맡게 된다.
이후 로동당 선전부 강연과장을 지낸다. 그리고 북한 문학예술총동맹(위원장 리기영, 서기장 리찬)의 중앙상임위원 자리에 앉게 된다. 뿐만 아니라 6.25 전쟁 중인 1951년에는 국립극장 총장, 1953년 조선작가동맹 중앙위 위원이 된다. 이어서 1961년 국립민속예술극장 총장, 1962년 아시아 아프리카 단결위위원장, 평화옹호 전국민족위 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3기 대의원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1980년대 말 이후부터 평양연극영화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결실>(1945), <철쇄는 끊어졌다>(1945), <서울 갔든 아버지>(1946), <3.1전후>(1947), <최후의 날>(1948), <불길>, <들꽃>, <풍요한 가을>, <우리 마을>(이상 1950), <선구자>(1953) 등의 희곡은 희곡집 『선구자』에 수록되어 조선작가동맹 출판사에서 1958년에 출간되었다. 희곡 <달내벌에 동이 튼다>(1963)와 남한을 비난하고 있는 희곡 <그날을 두고>(1965)가 있다. 평론으로는 「일본푸로극장동맹 제3회 전국대회 방청기」(1931), 「연극운동의 출발」(1931), 「슈프렛히콜-연극의 새로운 형식으로」(1932), 「국제연극운동의 전망」(1932), 「조선의 신극운동」(1932), 「연극운동과 그 조직」(1945), 「조선연극의 진로」(1945), 「민주연극의 체제수립을 위하여」(1946), 「연극에 있어서 형식주의 및 자연주의적 잔재와의 투쟁」(1952), 「희곡창작과 언어문제」(1952), 「극문학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중심 문제」(1956), 「극문학의 일보 전진을 위하여」(1961)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소인극 하는 법』(1946), 『연극이란 무엇인가』(1956) 등의 연극이론서와 「천리마 현실과 희극」(196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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