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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옥 [Mun Kyongok]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음악 > 양악 > 작곡가
9분류 인물
집필자 김수현
출생일1920년 2월 1일
사망일1979년 3월 12일
출생지황해남도 해주시
정의
국립예술극장과 국립교향악단의 작곡가, 평양음악대학 작곡학부 교원,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작곡가로 활동한 북한의 여성 음악가이다.
내용
문경옥은 1942년 일본 무사시노(武藏野) 음악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했고, 해방 후 1946년 가을 첫 작품인 <8.15환상곡>을 창작해 피아노독주회를 가졌다. 이후 국립교향악단의 피아노 연주자와 평양음악학교 피아노 교원으로 활동하였다. 1947년부터 1953년까지 7년간 소련 레닌그라드음악대학에서 유학했고, 평양에 돌아온 후에는 국립예술극장과 국립교향악단의 작곡가, 평양음악대학 작곡학부 교원,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작곡가로 활동했다. 1955년 그는 월북 작곡가이자 국립예술극장에서 함께 활동하던 리건우와 결혼했다. 1963년에는 평양에서 ‘문경옥 작품발표회’를 열었다.
그는 <평화의 노래>(1954년), 가극 <솔개골사람들>(1956년), 교향시 <행복>(1957년), 피아노협주곡 <청춘>(1958년), 가극 <원한의 분계선>(1965) 등을 작곡했고, <당을 따라 앞으로>(1959년), <조국에 드리는 노래>(1960년), <인민은 그 품에 안기여 행복합니다>(1971) 등의 가요를 창작했다. 이외에도 관현악 <청성곡>, <민요를 주제로 한 관현악조곡> 등의 작품이 있다.
그는 6편의 교향곡을 비롯해 69곡의 성악곡, 그 외에 수십 편의 피아노협주곡 등을 남겼다. 북한 최초의 여성작곡가였던 그는 가요를 비롯한 기악소품들과 교향시, 교향곡 등 큰 형식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목에서 창작적 재능을 나타냈으며, 특히 서정가요에서는 여성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섬세하고 소박한 감정, 밝은 서정과 가벼운 울림 등 다양한 정서가 풍긴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련어 국립예술극장, 국립교향악단, 평양음악대학, 리건우
참고자료 「북의 첫 여성작곡가 문경옥 (상)」, 『민족21』, 12월호, 2007.
「북의 첫 여성작곡가 문경옥 (하)」, 『민족21』, 1월호, 2008.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편, 『한국 작곡가 사전』, 서울: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1999.
평화문제연구소 편, 『조선향토대백과 17』, 서울: 평화문제연구소, 2006.

이미지

문경옥

이미지명 : 문경옥

1946년 두 번째 창작곡인 <대동강의 저녁>을 가필해 제출한 <고향의 봄> 악보.

이미지명 : 1946년 두 번째 창작곡인 <대동강의 저녁>을 가필해 제출한 <고향의 봄> 악보.

문경옥

이미지명 : 문경옥

1949년에 작곡해 호평을 받은 <단오명절>의 악보. 문경옥이 직접 그린 악보이다.

이미지명 : 1949년에 작곡해 호평을 받은 <단오명절>의 악보. 문경옥이 직접 그린 악보이다.

1949년에 작곡해 호평을 받은 <단오명절>의 악보. 문경옥이 직접 그린 악보이다.

이미지명 : 1949년에 작곡해 호평을 받은 <단오명절>의 악보. 문경옥이 직접 그린 악보이다.

귀국 후 두 번째 곡으로 발표한 <평화의 노래>의 구성내용

이미지명 : 귀국 후 두 번째 곡으로 발표한 <평화의 노래>의 구성내용

1970년 창작한 곡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민요곡을 아주 잘 썼다”라고 평가한 <북청교시 그 열매가 온 나라의 주렁졌소> 악보의 일부. 문경옥이 직접 그린 악보이다.

이미지명 : 1970년 창작한 곡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민요곡을 아주 잘 썼다”라고 평가한 <북청교시 그 열매가 온 나라의 주렁졌소> 악보의 일부. 문경옥이 직접 그린 악보이다.

문경옥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완성했으나 발표하지 못한 유고작품의 악보.

이미지명 : 문경옥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완성했으나 발표하지 못한 유고작품의 악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