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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혁태 [Chang Hyoktae]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미술 > 작가 > 회화 > 유화
9분류
인물
집필자
박계리
출생일
1929년 3월 3일
사망일
미상
출생지
함경북도 청진시 암구역 신진동
정의
유화의 고유한 기법을 살려 역사적 시대상을 생동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한 북한의 유화가이다.
내용
천마소학교, 청진중학교를 졸업, 1948년에 함흥고급중학교를 졸업하였다. 함흥고급중학교때 수채화 <외양간>을 그려 ‘함경북도학생미술전람회’에서 3등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미술연구소를 운영하던 한상익, 박영익 등의 개별지도를 받게 되었다. 1948년 평양미술대학 회화학부에 입학하였으며, 1954년 평양미술대학을 졸업하였다. 문화선전성 예술국 책임지도원으로 2년간 예술행정사업도 하였다. 1956년부터 1959년까지 조선미술박물관 학술부장, 1963년까지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 지도원, 소속 미술가로 활동하였다. 1963년부터 1995년까지 30여 년간 그는 조선미술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냈다.
장혁태의 첫 작품은 <여성소발구공>(1955)으로 전후복구건설시기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그림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조선미술가동맹 활동 중에 러시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헝가리를 방문하여 많은 습작을 그리기도 하였다. 북한미술계는 외국을 방문하며 풍부해진 감정과 넓어진 견문들이 그의 인물화, 풍경화, 펜화, 연필화에 그대로 반영되 평가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창작한 그림을 가지고 박물관에서 2인 전람회를 열었다. 이 전람회에 내놓았던 대표적 작품은 <와르샤와교외의 풍경>, <위또샤풍경>, <삐까쯔풍경> 등이다. 유화 <전쟁이 끝난 강선땅에서>(합작, 1961) 등은 이 시기의 대표 유화작이다.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재직 시절 유화 <두만강가에서>(1966) 등의 풍경화와 정물화를 창작했다.
장혁태는 북한미술계에서 유화의 고유한 기법을 살려 역사적 시대상을 생동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해내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관련어
한상익
,
박영익
,
평양미술대학
,
관련자료(북)
리재현, 『조선역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