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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흥모 [Kwak Hungmo]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미술 > 작가 > 공예
9분류 인물
집필자 박계리
출생일1921년 9월 19일
사망일1988년 9월 27일
출생지황해북도 사리원시 신양리 (현 사리원시 구룡리)
정의
곽흥모는 날염공예를 보존 계승하는데 기여한 공예가이며, 선전화가이다.
용례/관용구
곽흥모는 직관선동성이 높은 수많은 선전화작품들로써 매 시기 제시된 당의 로선과 방침들을 인민대중속에 선전하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였다. 『문학예술대사전(DVD)』, 2006.
내용
1929년 사리원 제1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36년 농업학교에 들어갔다가 중퇴하고 외국 유학을 떠나 미술학교 공예도안과를 다녔다. 1944년 귀국 후 서울 인형극장협회 미술원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 사리원에서 미술연구소를 설립하여 인재들을 키웠다. 6.25 전쟁 때 평양미술대학 도안학부장으로, 1954년부터 조선미술가동맹, 중앙미술제작소 날염장식부, 미술출판사에서 활동하였다. 1968년 이후 황해북도 평산군, 사리원시의 미술제작소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곽흥모는 공예창작활동에 있어 날염을 주로 제작하였는데 <금강산의 아침>(1955)이 대표작으로, 간결한 선과 부드러운 색채의 회화성이 엿보인다. 말년기에는 화각공예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곽흥모는 김일성 탄생 50주년을 기념하여 당중앙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공화국 내각이 공동으로 준비한 선물의 도안과 1964년, 1965년, 1967년, 1968년 김일성의 새해 연하장을 제작하였다. 공예 및 도안에 대한 집필은 교과서 『도안의 기본』(1962), 논설 「우리 나라 민족공예의 보다 급속한 발전을 위하여」(1960), 「공예장식미술에서 민족적 특성과 현대성」 등이 있다.
이외에 곽흥모가 특기를 보인 분야는 선전화이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초 사이 20여 년 간 도안의 화면 구성을 적용시킨 선전화 60여 점을 제작하였다. 북한 미술계에서는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직관적인 구성의 호소력과 상징적인 도안의 설득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대표작은 <동무는 천리마를 탔는가?>(1958)로 천리마를 타고 공장과 농촌의 하늘 위를 나는 용해공을 그렸다. 바람을 사선의 빗살로 표현하여 속도감을 표현하고, 용해공의 시선과 손가락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이다. 또 다른 선전화 <철과 기계는 공업의 왕이다>(1958)는 철과 기계 생산이 사회 건설의 중요한 문제임을 명료하게 표현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곽흥모는 창작의 공로를 인정받아 1957년 김일성표창장을 수여받았다. 곽흥모의 선전화 <조국의 통일독립과 사회주의 건설을 위하여 모두다 앞으로!>(1956), <8.15해방 15주년>(1960), 나전옻칠공예 <풍년송과자함>(합작, 1958)은 전람회에서 입상하였다.
곽흥모는 날염공예를 보존 계승하는데 기여하였으며 선전화에서도 북한 미술계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
관련어 선전화, 평양미술대학, 중앙미술제작소, 김일성상
관련자료(북)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백과사전출판사 편, 『광명백과사전 6 : 문학예술』,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2008.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원, 2006.
참고자료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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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흥모

이미지명 : 곽흥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