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검색 결과 바로가기
HOME > 디렉토리 서비스 > 가나다색인
이전 다음 A+ A- 인쇄

응향사건 [Eunghyang affair]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문학 > 시
9분류 행사
집필자 오태호
시기1946년
개최장소함경남도 원산
정의
응향사건은 1946년 함경남도 원산의 원산문학가동맹이 출간한 해방기념시집 『응향(凝香)』에 얽힌 북한 최초의 필화 사건으로, 이후 북한문학의 도식주의적 경향을 가속화한 계기가 된 사건이다.
내용
응향 사건은 1946년 말 함경남도 원산의 원산문학가동맹(‘문예총’ 원산지부)이 출간한 해방기념시집 『응향』에 얽힌 필화 사건이다. 당시 원산문학가동맹의 위원장은 박경수였으며, 강홍운, 구상, 서창훈, 이종민, 노양근 등의 시가 실렸고, 화가 이중섭이 ‘유희하는 군동(群童)’상을 표지에 그려넣으며 장정을 맡았다.
시집에 실려 있던 시 가운데 일부가 애상적이고 허무한 정서를 담고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1946년 12월 20일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상무위원회’가 소집되면서 필화 사건으로 점화되었다. 상무위원회는 이 시집을 퇴폐적이며 반인민적인 것으로 규정한 결정서를 발표하였고, 최명익, 송영, 김사량, 김이석 등을 검열원으로 원산에 파견하였다.
특히 이 결정서가 조선문학가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에 1947년 4월 「시집 『응향』에 관한 결정서 ―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상임위원회의 결정서」라는 제목으로 게재되면서 남한 문단에도 알려져, 김동리를 시작으로 조연현, 곽종원, 임긍재 등 우익 문인들이 반론을 발표하기도 했다. 구상은 이 사건을 계기로 월남했고, 북한 정권의 사회주의 문학에 대한 관점이 분명히 드러나면서 남한의 보수 문단은 친일 논란을 잠재우고 반공주의를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응향 사건’은 남북한 문학의 결절점(結節點)에 해당하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다. 북한문단에서 문학 작품에 대한 조직적 검열이 강조된 하나의 사건이며, 이후 북한문학의 경직성과 도식주의적 검열을 가져오는 하나의 시발점에 해당하기 때문에 북한문학의 당문학적 폐쇄성을 알리는 신호탄에 해당한다. 북한에서는 ‘결정서’ 들을 통해 『응향』에 실린 시들이 내포한 조선 현실에 대한 회의와 공상, 퇴폐와 현실 도피, 절망적인 경향이 비판되고, 일제의 잔재이자 부르주아 퇴폐 미학이 내포한 정치적 무관심과 무사상성의 오류를 극복해야 할 것이 강조된다.
관련어 시집 『응향』, 『응향』 결정서
동의어 응향
관련연구(남) 이명재 편, 『북한문학사전』, 서울: 국학자료원, 1995.
구상, 「시집 『응향』 필화사건 전말기」, 『시와 삶의 노트(구상문학총서 제6권)』, 홍성사, 2007.
오태호, 「‘『응향』 결정서’를 둘러싼 해방기 문단의 인식론적 차이 연구」, 『어문론집』, 48집, 2011.
관련자료(북)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상임위원회 결정서, 「시집 『응향』에 관한 결정서」, 『문화전선』, 3집, 1947.
백인준, 「문학예술은 인민에게 복무하여야 할 것이다: 원산문학가동맹 편집 시집 『응향』을 평함」, 『문학』, 3호, 1947.
결정서,「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제1차 확대상위원회 결정서」, 『문화전선』, 4집, 1947.
결정서,「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제4차 중앙위원회 결정서」, 『조선문학』, 2호, 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