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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경 [O Taekkyong]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미술 > 작가 > 회화 > 유화
9분류 인물
집필자 홍지석
출생일1913년 11월 26일
사망일1978년 1월 5일
출생지황해도 해주시 구제동
정의
황해도 해주 태생의 유화가로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서 수학했고 해방 후 미술동맹 해주시위원장,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다수의 유화작품을 창작했다.
내용
오택경은 1913년 황해도 해주시에서 자작농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해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고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 1937년에 귀국하여 해주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다. 해방 후에 황해남도예술연맹 미술부책임자, 미술동맹 해주시위원장, 북조선교육문화인직업동맹 황해남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1947년 1월에 북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에 소환되어 총무부장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에 유화 <동지>(1945)로 ‘황해남도미술전람회’에서 1등상을 받았고 <인민의 소리>(1947)로 ‘전국문학예술축전 미술전람회’에서 2등상을 받았다.
6.25 전쟁기에는 최고사령부 소속 군관(소좌)으로 있으면서 비행장 보위임무를 수행하는 한편 선전화 <조국을 위하여>, <우리의 향토를 우리의 손으로 지키자>, <우리의 승리의 조직자이시며 고무자이신 김일성동지 만세!> 등을 창작했다. 전후 조선미술가동맹에서 1957년까지 현역미술가로 있으면서 유화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1954), <새 기원의 날>(1955), <기다리던 대오>(1955), <풍암의 황혼>(1956), <리순신장군초상>(1956), <개수답에서>(1957), <원산부두로동자들의 총파업>(1950~1955) 등을 제작했다. 1957년에서 1963년 초까지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리재현은 오택경을 “인민들의 투쟁과 생활에서 의의있는 내용들을 제 때에 미술작품에 반영함으로써 우리 미술의 사상예술적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했다”고 평한다.
관련자료(북)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증보판)』,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이미지

오택경

이미지명 : 오택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