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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석 [Kim Sunsok]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문학 > 아동문학가
9분류 인물
집필자 마성은
출생일1921년 10월 28일
사망일1974년 12월 16일
출생지함경북도 라남시 수남리(현재의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 일대)
정의
1950년대 북한의 대표시인 중의 한 사람이자 아동문학가이다.
내용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김순석은 함경북도 라남시 수남리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1934년에 부모를 따라 중국 옌벤(延边)으로 이주하여 7년 동안 거주하였다. 김순석은 윤동주의 고향이기도 한 용정시(龙井市)에서 사립중학교에 다녔는데, 중학교 시절부터 시 습작에 노력을 기울였다.
광복 이후 북조선예술총련맹 함경북도위원회에서 활동한 그는 시 <산향>(1947), <승리의 송가>(1948), <잣나무>(1948), <향나무>(1949), <공장지구의 별빛 아래서>(1949), <걸어서 나는 가리라>(1950)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창작을 시작하였다. 그는 1950년 4월까지 40편의 작품을 골라 첫 시집 『새날의 서정』을 엮었으나, 인쇄 중에 6.25 전쟁이 발발하였고 폭격으로 원고가 소실되었다.
그는 6.25 전쟁 당시 조선문학예술총동맹 함경북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고향 사람들의 투쟁상과 고상한 정신을 노래한 시집 『영웅의 땅』(1953)을 발표하였다.
6.25 전쟁 이후 북한아동문학의 발전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으나, 비평에 있어서는 아동에게 정치의식을 주입하는 작품을 강요하였다. 백석에 의하여 촉발된 ‘학령 전 아동문학 논쟁’에서 김순석은 유년동요에 사상성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동요작품에 대하여」에서 동요가 취급해야 할 테마들에 관하여 논하였는데, 모두 사상성에 관한 것들이었다.
1954년 4년 26일에는 소련작가동맹의 초청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작가대표단의 일원으로 3개월간 소련 각지를 여행하였다. 방문 기간 중 소련작가동맹 시문학 부장인 스떼빤 뻬뜨로비치 쉬빠쵸브(Степа́н Петро́вич Щипачёв, 1898~1980)를 만나 시에 관한 담론을 나누었는데, 소련 방문 및 쉬빠쵸브와의 교류는 그의 시 창작에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소련 방문 경험을 바탕으로 『찌플리쓰의 등잔불』(1955)을 간행하였다.
1953년 9월 제1차 전국 작가 예술가 대회 이후 문예조직의 개편과 기존 작가의 현지파견이 이루어지는데, 김순석도 1954년 11월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를 통하여 『조선문학』 편집위원에서 해임되었다. 1955년에는 고향과 가까운 함경북도 어랑군으로 현지파견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대표 시집인 『황금의 땅』 창작에 집중하였다. 이후 1956년 11월부터 1958년 12월까지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시 분과 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57년에는 전후복구건설 시기 농촌의 사회주의 기초 건설에 참여한 경험을 토대로 창작한 다수의 시가 수록된 『황금의 땅』을 출간하였다.
1958년 말부터 1959년 초에 북한문학 내부에서 사상투쟁이 벌어지자, 김순석은 소부르주아 성향을 지닌 작가로 지목되었다. 결국 그는 1958년 12월 27일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를 통하여 시분과 위원장에서 해임되었고, 1959년 초부터는 공식적인 비판을 받으며 희천공작기계공장으로 가게 되었다. 1962~1968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시 창작 강의를 담당했고, 이후 희천공작기계공장 현지파견 작가로 활동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서정시 <어랑천>(1951), 동요 <짜작나무 한 그루>(1954), <전투놀음>(1954), <보배손>(1966), 동시 <큰 나무 작은 나무>(1954), <백두산>(1958), <군당 위원회의 불빛>(1963), <고마운 조국에>(1963), <베네주엘라의 자크 루비>(1964), <베개봉의 자랑>(1964) 등이 있다. 시집으로는 『황금의 땅』(1957)ㆍ『어랑땅의 노래』(1958) 등이 있다.
남한에서 김순석에 관한 연구는 극히 드물지만,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다. 김영수는 “김순석은 50년대 북측 해방세대 대표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북쪽문단에서 일관적으로 강조하던 정치적 효용성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문학의 본체론적인 예술성을 주장하던 시인”이라고 평가하였다. 오성호는 「북한 현대시 개관」(『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_북한문학』)에서 “북한 내에서는 평가가 엇갈리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편자가 읽은 바로는 북한 최고의 시인으로 김순석을 꼽아도 무리가 없지 않을까 생각되었다”며 호평하였다.
북한에서 김순석은 소부르주아적 사상 잔재가 남아 있는 시인으로 저평가되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리정구는 「최근 우리 시문학상에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에서 “우리 시인들 중 일부 동무들은 이에 대하여 아직도 심각한 주의를 돌리지 못하고 자기 작품 속에 비계급적인 통용어 비특징적인 지방어를 끌어 들임으로써 인민들의 언어 교양에 좋지 못한 영향을 주고 있다”며, 김순석의 시 <고개길> 등을 비롯한 일부 시인의 작품들을 비판하였다. 특히 김순석의 시집 『영웅의 땅』에 수록된 <눈보라>를 예로 들며, “비감각적이며 실감이 없으며 설득성을 가지지 못하는 부정확한 언어적 표현들”을 사용했다고 비판하였다.
관련연구(남) 최미란, 「김순석 시 연구」, 석사논문,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김영수, 「김순석의 시적 행로와 향토적 미의식의 확대-『황금의 땅』을 중심으로」, 『새국어교육』, 70호, 2005.
관련자료(북) 김순석, 「동요작품에 대하여」, 『아동문학집』, 1집, 1950.
김명수, 「아동문학 창작에 있어서의 몇가지 문제-『아동 문학』일이(一二)집과 동요 동시집 『항상 배우며 준비하자』를 중심으로」, 『조선문학』, 12호, 1953.
리정구, 「최근 우리 시문학상에 제기되는 몇가지 문제」, 『조선문학』, 9호, 1954.
리정구, 「우리 시문학의 제문제」, 『조선문학』, 8호, 1954.
김명수, 「서정시에 있어서의 전형성ㆍ성격ㆍ쓰찔」, 『조선문학』, 10호, 1955.
박팔양, 「시집 『찌플리쓰의 등잔불』」, 『조선문학』, 11호, 1955.
한설야, 「전후 조선 문학의 현 상태와 전망-제2차 조선 작가 대회에서 한 한 설야 위원장의 보고」, 조선작가동맹출판사 편, 『제2차 조선 작가 대회 문헌집』, 1956.
김순석, 「시인들의 협력은 우리의 시 문학을 전진시킨다」, 조선작가동맹출판사 편, 『제2차 조선 작가 대회 문헌집』, 발행지불명,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6.
『문학신문』, 1957년 2월 7일.
『문학신문』, 1958년 7월 3일.
『문학신문』, 1958년 7월 17일.
『문학신문』, 1958년 8월 28일.
장형준, 「해방후 아동 문학의 찬연한 발전 로정」, 조선작가동맹출판사 편, 『해방후 우리문학』, 1958.
『문학신문』, 1959년 1월 4일.
『문학신문』, 1959년 2월 1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언어문학연구소 문학연구실, 『조선문학통사 하』, 평양: 과학원출판사, 1959.
『문학신문』, 1959년 2월 26일.
『문학신문』, 1959년 3월 22일.
『문학신문』, 1959년 4월 16일.
박종원ㆍ류만, 『조선문학개관 2』,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86.
참고자료 김성수, 『통일의 문학, 비평의 논리』, 서울: 책세상, 2001.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_북한문학』,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6.
원종찬, 『북한의 아동문학』, 파주: 청동거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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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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