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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무산의 밤거리를 걷는다 [I Walk Frequently the Night Street of Musan]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문학 > 시 > 서정시
9분류 작품
집필자 최진이
시기1990년 3월
제작자김철민
정의
<나는 자주 무산의 밤거리를 걷는다>는 무산광산 사람들을 노래한 김철민의 시이다.
내용
『조선문학』 1990년 3호에 발표, 게재되어 있다. 시인 김철민은 전후 베이비붐 직전 세대로서 중학교 문학교원 출신이다. 이 시를 창작하던 당시 시인은 작가동맹 평양시 시문학창작실의 차세대 대표 시인으로서 선배 세대의 시정신을 이었다고 여겨지던 유망주였다. 그가 있기에 시문단의 시정신이 고수된다고 기대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시를 창작한 해 여름, 시인은 보위부 사건에 말려들었다. 이 시의 창작과 관련해 함경북도 출장이 잦았던 시인은 그 해 겨울 도창작실 작가, 시인들과 술 마시는 자리에 어울리면서 김일성 가계와 관련된 어떤 말이 나왔다고 한다. 좌중의 한 젊은이에 의해 그 발언은 즉시 보위부에 밀고 되었다. 이에 연루된 여러 작가, 시인들이 보위부를 들락거리게 되었고 김철민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위부의 심문은 간단했다. “누구에게 들었나?”와 “네 말이었나?”였다. 첫 물음에 솔직한 답을 하면 김철민 시인은 살아날 것이요, 두 번째 물음에 억지로 답을 하면 시인 자신이 죽을 판이었다. 보위부는 일주일간 심문한 후에 피의자 김 시인에게 자백서를 내주며 그 말을 한 사람의 이름과 서명을 받아오라고 이틀 시간을 주었다. 김 시인은 고민 끝에 60넘은 노모에게 서명을 부탁했는데 돌아온 답은 “야, 내가 어떻게 그런 서명을 하니?”였다. 마지막 희망을 포기한 김 시인은 다음날 대동강에 몸을 던졌다. 처음엔 이 사실을 몰랐는데 보위부로부터 김 시인 호출이 왔고 당사자를 찾아도 나타나지 않자 온 작가동맹이 김 시인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오전에 대동강변을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인을 보았다는 등 여러 증언자들의 보고가 일치되면서 ‘자살’이라 결론, 해당기관에 보고되어 대동강을 수색하기 시작하였다. 이틀 만에 대동강에서 시신을 건져 올리게 되었다. 이로써 김 시인 관련 보위부 사건은 마무리 지어졌다. 당시 시인에게는 유치원생 아들과 처가 있었다.
시인의 자살 비보가 접해지면서 작가, 시인들 속에서는 “야, 어머니가 서명을 하지. 인젠 다 산 목숨인데 아들을 살렸어야지!” 하며 시인의 노모를 탓하는 목소리가 다 나왔다. 이 사건의 밀고자인 함북도 창작실의 젊은 심의원은 몇 년간은 작품발표도 못한 채 작가, 시인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김철민 시인이 죽고 나서 평양시 시창작실은 잇속이 발달한 젊은 시인들 판이 되고 말았다. ‘충성’을 표방한 시창작이 대세를 이루고 윤리나 시정신은 웃음거리가 되는 형국이었다.
김철민의 유작시 <나는 자주 무산의 밤거리를 걷는다>는 그때까지 이렇다 할 시가 없어, 시보다는 ‘시정신’으로 창작적 무능력을 무마하려는 건 아닌가 하는 주위의 우려를 불식시켜준 작품이었다. 또한 외지인 무산을 외부자의 시선이 아닌, 시인의 삶 속에 끌어들여 노래하는 데서 성과를 보인 시라는 면도 있다.
이 시의 서정적 주인공은 시적 대상에 상당히 친숙해져 있다. 외진 도시 무산의 낮도 아닌 밤의 특징을 잡아낼 정도까지 익숙해져 있다. 무산에는 시인이 없고, 무산을 노래하는 시인의 시는 전부 외부자의 시선일 수밖에 없던 종전의 시의 약점을 시인은 극복해낸 것이다.

무산의 밤을 모르는 사람은
무산의 낮도 모르는 사람
무산을 알려거든
무산의 밤거리를 걸어보라

무산의 밤거리는 우선 낮의 모습이 전제로 되어 있다. 그중에도 시인의 시선을 특별히 끈 곳은 다름 아닌 후야근(後夜勤, 밤 작업을 두 교대로 나누어 할 때에 뒤의 근무)을 앞둔 밤거리이다.

때 아닌 한밤중에 불이 켜지는 창문들
한둘도 아니게 쏟아져 나오는 그 불빛에
거리는 그만 밤을 잊은 듯
남몰래 사랑을 속삭이던 그림자들
어느새 물 새듯 사라져버리고….

시인은 한밤중에 갑자기 불 켜지는 창문들을 보며 놀란다. 그 불빛에 사랑을 속삭이던 젊은이들이 물 새듯 사라져버리는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시인은 젊다. 그러기에 그의 눈엔 “남몰래 사랑을 속삭이던 그림자들”이 걸려든다.

즐거이 그릇 부딪치는 소리
아이들의 칭얼거리는 소리
생활의 음향이 흐르는 이때는
후야근 서두르는 때
밤에도 한참 깊은 때

이때라 별을 흔들며 달을 굴리며
광구서 울려오는 발파소리 발파소리…
문들이 열린다, 잠을 씻은 얼굴들이 나온다
하루 이틀도 아닌데 안해들까진 왜 나오는가
아마도 후야근을 바래주는 멋도 있는 게다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 노모가 있는 자신의 가족이 연상되는 그런 가정들이 무산의 밤거리에서 보인다. 발파소리와 함께 그 가정의 창문들이 열리더니 잠을 씻은 얼굴들이 나오고 그 뒤로 후야근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들이 따라 나온다. 그 극진한 모습에 “하루 이틀도 아닌데 안해들까진 왜 나오는가”고 시인은 혀를 내두른다. 시인은 정이 많아 보인다. 시인의 시선은 곧 잠을 씻은 얼굴들이 가닿을 철산봉 마루로 향한다.

아, 어서 오라 부르는 저 철산봉 마루엔
그 얼마나 장한 전경이 펼쳐지랴
층층 기름 먹은 채굴 계단마다
이 밤을 보자는 듯 쇠돌맥은 드러나고
쇠돌 실은 전조등들 구슬꿰미처럼 늘어서고

철산봉엔 시인이 서 있는 무산의 이 밤거리보다 더 장한 전경이 펼쳐져 있다. 이 밤을 보자는 듯 쇠돌맥은 드러나고 그 쇠돌 실은 전차의 전조등들은 구슬꿰미처럼 늘어섰다.

온통으로 붐빈다
모두가 들먹인다
어둠이 생활을 가리지 못하고
고요가 삶의 음향을 재우지 못하는 밤

온통 붐비고 모두가 들먹이는 무산의 밤에 대해 어둠이나 고요가 속성인 밤은 자기 역할을 못한다.

쇠돌은 낮에도 쇠돌이요 밤에도 쇠돌
쇠돌캐는 광부들 다름 있으랴
해처럼 불타는 심장이 광부들에게 있어
밤에도 한낮처럼 들끓는 무산의 밤
아, 나는 자주 무산의 밤거리를 걷는다.

쇠돌을 낮에 캐나 밤에 캐나 차이가 없듯, 광부도 낮일을 하나 밤일을 하나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무산은 밤에도 한낮처럼 들끓어대고 시인은 이런 무산의 밤거리를 자주 걷는 것이다.
관련어 김철민
관련연구(남) 신형기 외,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 [4] : 북한문학』,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7.
관련자료(북) 김철민, 「나는 자주 무산의 밤거리를 걷는다」, 『조선문학』, 3호,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