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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수예연구소 [Pyongyang Embroidery Research Institution]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미술
9분류 조직
집필자 안미옥
시기1947년 5월
소재지평양시 보통강구역 경흥동
정의
평양수예연구소는 내각 경공업성 산하의 비교적 규모가 큰 북한의 공예미술에서 수예창작연구, 생산, 해외수출을 기본으로 하는 중앙 수예 창작 수출 기관이다.
정의
평양수예연구소는 내각 경공업성 산하의 비교적 규모가 큰 북한의 공예미술에서 수예창작연구, 생산, 해외수출을 기본으로 하는 중앙 수예창작 수출기관이다.
규모
평양수예연구소는 2층 한옥집에 수예창작가 100여 명, 손수예공 200여 명, 기계수예공 300여 명등, 총 600여 명이 소속되어 있다.
규모와 구성
평양수예연구소는 2층 한옥집에 수예창작가 100여 명, 손수예공 200여 명, 기계수예공 300여 명등, 총 600여 명이 소속되어 있다.
내용
평양수예연구소는 1947년 5월 9명의 여성들이 모여앉아 베개모, 축기 등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연구소 건물은 보통강변에 민족적 형식의 합각지붕을 인 전통 한옥집으로 되어있다. 수예연구소는 미술대학이나 예술대학을 졸업한 창작가들이 작업하는 창작실, 미술실, 도안실과 일반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손수예실, 기계수예실, 피복의상실, 전시실 등 생산지원 부서들로 이루어진 창작집단으로 발전하였다. 평양수예연구소는 내각 경공업성 산하의 연구소이지만, 로동당 39호실(로동당 외화관리 전담부서)에서 운영하여 해외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기도 하였다. 북한의 국가적인 투자를 받는 곳이면서, 외국인 참관지로 지정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외화벌이, 체제홍보 차원에서 수예작품들을 수출하고, 수예기법을 해외에 전수하기도 한다.
지방의 각도마다에는 평양수예연구소를 모체로 하는 수예품공장들이 설립되어 있다. 그곳들에도 창작실과 기술준비실, 손수예반, 기계수예반, 피복실들로 되어있다.
손수예는 고전적이면서도 품위 있는 기호품으로, 집체작으로 완성한다면 기계수예는 가정과 사무실 장식품으로 많이 사용된다.
평양수예연구소는 7세기부터 발전한 수예전통을 계승하는 손수예를 기본으로 하여 평수, 장단수, 우림수, 찍음수, 십자수 등 다양한 기법들을 묘사 대상의 특성에 맞게 배합하여 새로운 수예기법을 개발하는 연구를 심화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독특한 질감과 재치 있는 묘사로 수예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하여 회화의 우아함과 정교함을 수예로 재현하고 있다. 특히 1978년에 창작된 손수예 <달밤의 기러기>, 1996년 <단풍든 칠보산>, 1989년 <비둘기춤>, <김일성화>, <김정일화>, <묘향산의 천길폭포>, <호랑이> 등 다수가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침대보, 원탁보, 의자등받이씌우개, 꽃병받치개 등을 만드는 일반기계수(봉재)와 전통혼례복, 어린이돌옷, 치마저고리, 속옷 장식 등의 의상장식기계수예(레이스)가 대중의 인기를 끌기도 한다.
평양수예연구소는 ‘국보적 가치’가 있는 수예작품들을 포함하여 연간 3만2천여 점의 각종 수예품들을 생산한다. 그중 손수예품은 연 2,000여 점, 기계수예품은 연 30,000여 점을 해외로 수출한다. 국제수공예품전람회에서 금메달과 특별상을 받기도 하였다. 평양수예연구소는 전통적 민족수예를 계승 발전하고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도 큰 의의를 부여받고 있다.
내용
평양수예연구소는 1947년 5월 9명의 여성들이 모여앉아 베개모, 축기 등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며, 연구소 건물은 보통강변에 민족적 형식의 합각지붕을 인 전통 한옥집으로 되어있다. 수예연구소는 미술대학이나 예술대학을 졸업한 창작가들이 작업하는 창작실, 미술실, 도안실과 일반 노동자들이 작업하는 손수예실, 기계수예실, 피복의상실, 전시실 등 생산지원 부서들로 이루어진 창작집단으로 발전하였다. 평양수예연구소는 내각 경공업성 산하의 연구소이지만, 노동당 39호실(노동당 외화관리 전담부서)에서 운영하여 해외수출로 외화를 벌어들이기도 하였다. 북한의 국가적인 투자를 받는 곳이면서, 외국인 참관지로 지정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외화벌이, 체제홍보 차원에서 수예작품들을 수출하고, 수예기법을 해외에 전수하기도 한다.
지방의 각도마다에는 평양수예연구소를 모체로 하는 수예품공장들이 설립되어 있다. 그곳들에도 창작실과 기술준비실, 손수예반, 기계수예반, 피복실들로 되어있다.
손수예는 고전적이면서도 품위 있는 기호품으로, 집체작으로 완성한다면 기계수예는 가정과 사무실 장식품으로 많이 사용된다.
평양수예연구소는 7세기부터 발전한 수예전통을 계승하는 손수예를 기본으로 하여 평수, 장단수, 우림수, 찍음수, 십자수 등 다양한 기법들을 묘사 대상의 특성에 맞게 배합하여 새로운 수예기법을 개발하는 연구를 심화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독특한 질감과 재치 있는 묘사로 수예만이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창작하여 회화의 우아함과 정교함을 수예로 재현하고 있다. 특히 1978년에 창작된 손수예 <달밤의 기러기>, 1996년 <단풍든 칠보산>, 1989년 <비둘기춤>, <김일성화>, <김정일화>, <묘향산의 천길폭포>, <호랑이> 등 다수가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침대보, 원탁보, 의자등받이씌우개, 꽃병받치개 등을 만드는 일반기계수(봉재)와 전통혼례복, 어린이돌옷, 치마저고리, 속옷 장식 등의 의상장식기계수예(레이스)가 대중의 인기를 끌기도 한다.
평양수예연구소는 ‘국보적 가치’가 있는 수예작품들을 포함하여 연간 3만2천여 점의 각종 수예품들을 생산한다. 그중 손수예품은 연 2,000여 점, 기계수예품은 연 30,000여 점을 해외로 수출한다. 국제수공예품전람회에서 금메달과 특별상을 받기도 하였다. 평양수예연구소는 전통적 민족수예를 계승 발전하고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도 큰 의의를 부여받고 있다.

이미지

평양수예연구소

이미지명 : 평양수예연구소

평양수예연구소2

이미지명 : 평양수예연구소2

평양수예연구소3

이미지명 : 평양수예연구소3

평양수예연구소4

이미지명 : 평양수예연구소4

평양수예연구소5

이미지명 : 평양수예연구소5

평양수예연구소6

이미지명 : 평양수예연구소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