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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My Hometown]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 예술영화
9분류 작품
집필자 이명자
시기1949년
제작자강홍식 연출, 국립영화촬영소
정의
북한 최초의 예술영화(극영화)이다.
내용
북한이 국립영화촬영소를 세운 후 인력과 자본을 동원하여 최초로 만든 극영화이다.
내용은 소작인 청년 관필이 조선인민혁명군으로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관필의 아버지가 죽자 최 주사는 소작을 떼지 않는 조건으로 관필 가족을 자기네 머슴처럼 부려먹는다. 5년 후에 소작주던 땅을 불하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5년이 지나자 관필이 자기 집 선산의 나무를 베어 판다는 이유로 소작을 떼겠다고 억지를 부린다. 관필은 이 사실을 따지러 갔다가 최 주사의 아들 인달과 싸움이 붙어 감옥에 가게 된다. 감옥에서 관필은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는 인민혁명군이 있음을 김 선생을 통해 알게 되어 탈옥하여 인민군에 입대한다. 거기에서 정신적, 육체적 훈련을 거친 관필은 간부로 성장해간다. 한편 관필이 없는 사이 그의 고향에서 일제의 수탈이 강도를 더해가 수많은 사람들이 징용에 끌려가고 관필의 약혼녀인 옥단도 공출되기에 이른다. 관필을 비롯한 인민군의 전투 과정과 고향의 비참한 모습이 교차편집되며 조선인민군이야말로 민족을 수난에서 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를 구축해간다. 해방 후 간부가 되어 돌아온 관필과 공출 갔다 돌아온 옥단의 만남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원래의 제목은 ‘고향’이었는데 김일성의 조언으로 ‘내 고향’이 되었다고 한다. 남한의 대표적 감독이자 북한에서 활동한 바 있는 신상옥 감독이 ‘북측 영화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평가한 바 있으며 유경애, 박학, 문예봉 등 월북 영화인들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 관필 역의 유원준은 이 영화로 데뷔해 1998년 사망하기까지 북한을 대표하는 남자배우로 경력을 이어간다.
북한에서 국립영화촬영소를 설립한 후 처음으로 내놓은 예술영화인 만큼 월북 영화인들의 힘으로 만들어졌지만 상업적 경향으로 기울어가던 남한 영화와 달리 사회주의 영화의 형식과 내용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관련어 강홍식, 국립영화촬영소
동의어 고향
관련연구(남) 이명자, 『북한영화사』,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
이종석, 「북한영화의 형성과정과 최초의 극영화 <내고향>연구」, 『문학과 영상』, 10권1호, 2009.
이명자, 「해방기 남북한 영화에 나타난 근대성과 여성담론 비교 연구」, 『현대영화연구』, 11호, 2011.
관련자료(북) 차형식, 「첫 예술영화 <내고향>과 한그루의 나무」, 『조선예술』, 8호, 1970.
장명욱, 「영화의 력사를 거슬러: 무에서 유를 창조한 예술영화 <내 고향>」, 『조선영화』, 4호, 1973.
참고자료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원, 2006.
백과사전종합출판사 편, 『광명백과사전』, 평양: 백과사전종합출판사, 2008.
이명자, 『신문·잡지·광고로 보는 남북한의 영화 연극 방송 1945-1953』, 서울: 민속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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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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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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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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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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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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