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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작가예술가대회 [National Meeting of Authors and Artists]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이론-공통 > 공통 > 행사
9분류
행사
집필자
김성수
시기
1953년 9월
개최장소
평양
정의
전국작가예술가대회는 6.25 전쟁 직후 부르주아미학 잔재의 청산과 문예총 해체 등 조직 개편이 이루어진 전국 단위의 대규모 작가 예술가 회의이다.
용례/관용구
1953년 한설야는 전국작가예술가대회에서 진술한 보고에서 “우리의 문학예술은 당적인 문학예술”이라고 하였다. 『조선문학』, 1953년 10호.
내용
6.25 전쟁 직후 열린 제1차 전국작가예술가대회에서 참석자들은 ‘부르주아미학 잔재’와 종파주의에 물들어 있는 기존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을 전격 해체하고 별도로 조선작가동맹 등을 발족시켰다. 문예조직의 대규모 개편이 이루어진 작가예술가회의는 표면적으로는 문학예술의 전 역량을 전후 복구에 집중하고 고전 연구와 현실 체험 등의 명분을 내세웠다. 이면에는 전후 처리과정에서 불거진 남로당계 제거의 일환으로 림화 등을 종파주의로 몰아 숙청하고 수많은 작가 예술가들을 농촌, 공장, 탄광으로 ‘현지파견’하였다. ‘부르주아미학사상의 잔재 청산’과 문예총 내부의 종파주의를 척결한다는 명분하에, 전쟁 동안 세가 커진 림화 등 조선문학가동맹 계열의 헤게모니를 거세한 셈이다.
그 이전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직후 임화가 주도하여 문예총 조직을 재정비한 바 있다. 즉, 1951년 3월 10일 서울에서 열린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과 남조선문화단체총연맹 연합회의에서 문예총 중앙기관과 산하 동맹 지도부를 다음과 같이 선출했던 것이다: 상무위원장 한설야, 부위원장 리태준, 조기천, 서기장 박웅걸, 동맹별 위원장(문학 리태준, 음악 리면상, 미술 정관철, 연극 신고송, 영화 심영, 무용 최승희, 사진 김진수), 문화전선사 주필 김남천, 문학예술사 주필 김조규, 미술제작소 소장 선우담. 하지만 1953년의 전국작가예술가대회를 통해 남로당 계열이 숙청되고 문예총이 해체되었으며 많은 작가들은 농촌, 공장, 광산, 등지로 현지파견 되었다. 1961년에서야 비로소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이 재창립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관련어
제2차 조선작가대회
,
조선문학예술총동맹
,
조선작가동맹
동의어
제1차 작가예술가대회
,
제1차 전국작가예술가대회
,
작가예술가대회
관련연구(남)
김성수, 「1950년대 북한 문학과 사회주의 리얼리즘」, 『현대북한연구』, 제2집 2호, 1999.
관련자료(북)
「조선문학예술총동맹 및 각 동맹 중앙위원」, 『문학예술』, 4월호, 1951.
「1953-1954년도 사업총화」, 국토통일원, 『북한의 문학예술 사업 총화집』,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