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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봉 [Mun Yepong]

문예봉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 영화배우
9분류 인물
집필자 이명자
출생일1917년 1월 3일
사망일1999년 3월 26일
출생지함경남도 함흥시
정의
월북한 영화배우이다.
내용

1917년 함경남도 함흥시 운흥리에서 태어나 연극배우인 아버지 문수일을 따라 극단 생활을 시작했다. 발성이 좋지 못해 무성영화배우로 적합하다는 춘사 나운규의 판단으로 1932년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로 영화에 데뷔한다. 한국 영화 사상 첫 유성영화인 <춘향전>의 춘향역을 맡았으며 <미몽>, <무지개>, <장화 홍련 전>, <나그네>에 출연하였고 친일 영화 <군용 열차>, <지원병>, <집 없는 천사>, <태양의 아이들>에 출연하였다. 1946년 영화동맹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48년 3월 극작가인 남편 임선규와 월북하여 북한의 첫 예술영화인 <내 고향>에 출연하였다. 이후 <용광로>, <소년 빨찌산>, <정찰병>, <빨치산 처녀>, <신혼 부부>, <성장의 길에서> 등 초기 북한 영화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출연하였으며 조선문학예술동맹의 영화동맹 위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북측본부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65년 조선 영화 4월호에 나운규를 천재라고 언급했다가 감상주의로 평가되어 숙청당해 안주 협동농장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1978년 복권되어 <춘향전>, <봄날의 눈석이>, <은비녀>등에 출연하였다. 마지막 작품은 <먼 훗날의 나의 모습>(1997)이다. 1999년 별세하여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었다.
문예봉은 일제시기부터 ‘3천만의 연인’으로 불린 남북한의 대표적 스타이다. 문예봉의 활동은 3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1기는 데뷔작 <임자 없는 나룻배>을 시작으로 조선 영화 출연기, 2기는 1938년 <군용열차>를 시작으로 하는 친일영화 출연기, 3기는 <내 고향>을 시작으로 하는 북한영화 출연기라고 할 수 있다.
문예봉의 데뷔작 <임자 없는 나룻배>는 홀로 딸을 키우는 뱃사공이 새로 들어서는 철교라는 근대 문물에 맞서는 이야기로 여기에서 문예봉은 뱃사공 역을 맡은 나운규의 딸로 등장한다. 수심 어린 문예봉의 인상과 역할의 이미지가 조화되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며 문예봉도 관심을 받았다. 여장남자에 의해 연기되던 여자 역할을 처음으로 여자가 연기하여 조선 최초의 여배우가 된 <의리적 구토>(1919)의 이월화 이후 신일선, 복혜숙 등 당시 여배우들은 수많은 스캔들과 루머에 시달리며 사생활이 노출되고 이로 인해 관심만큼이나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에 비해 문예봉은 현실과 영화 모두에서 ‘현모양처’이미지를 쌓으며 인기를 얻었다. 1937년 극작가인 임선규와 일찍 결혼한 문예봉은 <미몽> 등 몇 작품을 제외하면 인고하고 기다리는 여인상을 주로 맡았다.
문예봉의 주요 이미지는 <나그네> 이후 형성되었다. 이규환 감독의 영화인 <나그네>는 <양산도>, <아리랑> 등의 민요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등 향토색 짙은 ‘조선 색의 영화’로 평가받았다. 여기에서 문예봉은 돈 벌러 간 남편을 기다리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옥희 역할을 맡았다. 시아버지마저 죽자 아이를 치료할 돈이 없어 고심하는 옥희에게 이발소 주인 삼수가 접근해 옥희를 강간하려 하나 남편이 돌아와 삼수를 죽이고 옥희를 구한다. 이로 인해 남편은 또다시 감옥으로 가게 되고 옥희는 홀로 남는다. 이 영화를 통해 문예봉의 주요한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농촌의 가난한 여인, 어린아이를 홀로 돌보는 어머니, 먼 길을 떠나서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가 그것이다. 이후 문예봉은 유사한 역할을 반복하는데 이는 문예봉의 중요한 역할이기도 했으며 ‘조선의 전통적 여인상’으로 굳어지게 된 이미지이기도 하다. 문예봉의 이러한 이미지는 그녀가 출연한 친일 영화와 북한 영화에서도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다. 북한에서도 문예봉의 연기를 “조선 녀성답게 유순하면서도 강의하고 교양 있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1951년 4월 26일 국기훈장 제3급의 훈장을 받았으며 북한 최초의 공훈배우 칭호를 받기도 했다. 복권된 이후 1982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일제시대부터 시작해 남한과 북한 모두에서 인기를 얻고 월북예술가 가운데에서도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왕성하게 활동한 배우라는 점에서 남북한 영화사를 이어주는 배우라고 평가할 수 있다.

관련어 공훈배우, 인민배우
관련연구(남) 박현희, 『문예봉과 김신재』, 서울: 선인, 2008.
역사비평편집위원회, 『남과 북을 만든 라이벌』, 서울: 역사비평사, 2008.
이화진, 「‘국민’처럼 연기하기:프로파간다의 여배우들」, 『여성문학연구』, 17집, 2007.
조영복, 『월북예술가: 오래 잊혀진 그들』, 서울: 돌베개, 2002.
홍정자, 『내가 만난 북녘 사람들』, 서울: 살림터, 1994.
관련자료(북) 「문예봉: 조선영화와 더불어 60년」.
소희조, 「인민배우 문예봉과 그의 창조활동」, 『예술교육』, 1호, 2008.
참고자료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2006.
이명자, 『신문·잡지·광고로 보는 남북한의 영화 연극 방송 1945-1953』, 서울: 민속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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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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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봉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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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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