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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빨찌산 [Boy Guerrilla]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 예술영화
9분류
작품
집필자
이명자
시기
1951년
제작자
윤룡규 연출, 국립영화촬영소
정의
6.25 전쟁 중에 제작된 첫 번째 예술영화(극영화)로, 6.25 전쟁 시기 미군 점령 하 소년 근위대원들의 활동 실화를 영화화 한 것이다.
내용
영화는 6.25 전쟁 시기 북한이 ‘전략적 후퇴 시기’라고 부르는 1.4 후퇴 때에 미군에게 점령당한 안주 탄광 소년 근위대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탄광촌의 자녀들인 철룡, 승환, 귀남 등은 미 군정이 들어와 학교마저 점령하자 빨치산 소년 대원을 조직해 활동한다. 이들은 미군의 심부름꾼으로 일하면서 정보를 수집해 산속에 후퇴해있는 인민군에게 알려준다. 그 과정에서 가족을 잃고 자신의 목숨도 위태롭게 되지만 처음으로 소년단에서 느꼈던 집단적 일체감과 해방 후 경험한 민주개혁의 기억을 공통 기억으로 간직하며 약해진 마음을 다진다.
전쟁 중 북한은 촬영소를 처음에는 의주로 나중에는 중국 장춘으로 옮겨 영화제작을 계속했다고 한다. 한편 국내에서도 전쟁 중 비행기 포격을 피해 가며 촬영에 임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제작된 영화인만큼 북한에서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대단하지만 그것은 주로 예술성에 대한 평가보다 사상성에 대한 평가로 점철돼 있다.
1951년 7월 ‘제6차 카를로비 바리국제영화제’에서 ‘자유를 위한 투쟁상’을 받았다. 월북 영화인 윤룡규는 이 작품의 연출로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로부터 국기훈장 제3급을 수여받았다. 1980년대에 오현락 영화문학, 렴성국 연출로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왕재산창작단에서 동명의 영화로 리메이크한 바 있다.
관련어
윤룡규
,
국립영화촬영소
동의어
소년빨치산
관련자료(북)
리종우, 「전시 첫 예술영화 <소년빨찌산>이 창작되여 보급되기까지」, 『조선영화』, 7호, 1997.
황봉송, 「조국해방전쟁승리에 적극 이바지한 영화」, 『조선영화』, 7호, 1997.
참고자료
『로동신문』, 1951년 3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