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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Kim Chinm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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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음악 > 민족음악 > 성악가
9분류
인물
집필자
권오성
출생일
1913년
사망일
1997년
출생지
황해남도 청단군 화양리
정의
북한의 서도민요 명창이자 작곡가이다.
내용
빈농의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어려서부터 서도민요를 구성지게 불렀으며 1928년부터 당시 서도민요 명창으로 알려진 신봉학에게서 서도민요를 배웠다. 남달리 음감과 기억력이 좋은 그는 3년 동안 <산염불>, <난봉가>, <구녕변가>, <수심가>, <배따라기>, <서도사거리>, <초한가>, <기성팔경가> 등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는 서도민요를 기본적으로 다 배웠다. 1993년 서울에서 열린 서선명창대회에서 독창 1등을 하며 관서명창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그 후 서울 빅터레코드회사에서 수십 곡의 민요와 잡가들을 레코드에 취입하였고, 이 시기에 서도민요 뿐 아니라 신민요, 경기도민요, 남도민요 등 여러 지방의 민요 잡가들을 부름으로써 음악적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더 많은 음악창작활동을 위해 서울을 떠나 개성, 해주, 청진, 중국 동북의 돈화현을 비롯한 길림성 일대를 거쳐 평양까지 왔으나 일제 식민지 통치 하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 일본노래를 부르라고 한 일제 검열관에게 항의한 것이 문제가 되어 레코드회사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해방 후 그는 조선고전악연구소, 문화선전성직속 고전악단, 국립예술극장 협률단, 국립고전예술극장, 국립민족예술극장, 국립민족가극극장 등 민족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중앙예술단체들에서 민족성악 배우로, 작곡가로 활동하였으며 조선음악가동맹 부위원장직을 겸임하였다.
이 시기 그는 서도민요를 기본으로 하면서 여러 가지 유형의 민요들을 불렀으며 창극의 주요 배역들도 맡아 수행하였다. 대표적으로 창극 <계월향전>에서 김응서역, <리순신장군>에서 부관역, <심청전>에서 국왕역, <춘향전>에서 변학도역, <장화홍련전>에서 머슴역, <흥부전>에서 마당쇠역 등을 들 수 있다. 그는 또한 민족음악 작품들도 수없이 창작하여 민족음악을 현대적 미감에 맞게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 대표적인 창작품으로서는 가요 <산천가>, <얼룩소야 어서 가자>, 민족가극 <강 건너 마을에서 새 노래 들려온다>등을 들 수 있다.
그는 1990년 ‘범민족통일음악회’와 1990년 12월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에도 출연하여 서울의 극장 무대들에서 민요를 불러 관객들의 절찬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평양음악무용대학 성악학부 민족성악 강좌의 민족성악 고문으로 있다가 1997년에 사망하였다.
관련어
서도민요
,
평양음악무용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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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김진명2
김진명3
이미지명 : 김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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