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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영 [Ho Munyong]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음악 > 양악 > 지휘자
9분류 인물
집필자 김수현
출생일1964년
사망일생존
출생지평양
정의
국립교향악단을 거쳐 만수대예술단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여성 음악가이다.
내용
허문영은 1964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북한의 ‘1세대 유학파’로서 불모지와 같았던 북한의 클래식계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허재복 전 만수대예술단장의 딸로 평양음악무용대학(현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을 나왔다.
허문영은 남포혁명학원을 나와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진학했고, 1980년대 후반 김정일이 평양음악무용대학을 방문했을 때 학교측에서 마련한 기악중주의 지휘를 맡은 것이 계기가 되어 레닌그라드음악대학에 유학하게 되었다. 그는 귀국 후 1991년부터 국립교향악단에서 활동했고, 1993년부터는 만수대예술단으로 자리를 옮겨 지휘자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이 허재복 단장이 아들이 없어 지휘봉을 넘겨주지 못하는 것을 늘 안타까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가 사망하자 딸에게 지휘봉을 넘겨주도록 지시했다”고 한다.
만수대예술단 지휘자로 활동하던 시절 북한의 대표적인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의 지휘를 맡았으며 2002년 4월 말부터 100여 일 간 평양 릉라도 5월 1일 경기장에서 공연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도 직접 지휘했다. 국립교향악단 지휘자로 발탁된 2006년 국립교향악단 창립 60돌 기념 공연에서 관현악 <아리랑>과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목소리>를 지휘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해 5월에는 김정일 앞에서 아버지 허재복의 단골 지휘곡이었던 차이코프스키의 <이탈리아 기상곡>을 지휘해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허문영은 “지휘에서 기본인 음악의 속도를 정확히 잡아주고 예박과 역점을 잘 찍어주어 연주가들이 작품을 여유있게, 음악적 감정을 옳게 살려나가도록 하는 지휘자, 지휘봉을 든 손만 아니라 표정, 눈길, 몸가짐을 통해서도 음악적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여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는 여성지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련어 국립교향악단, 만수대예술단, 허재복, 평양음악무용대학
관련자료(북) 「<어버이사랑속에서> 지휘자 허문영동무」, 『조선예술』, 8호, 2006.
참고자료 이경수, 「2대에 걸쳐 북 클래식 음악계 지휘한 ‘천재 부녀’ 허재복과 허문영」, 『민족21』, 5월호, 2009.
『민족통신』, 2008년 2월 28일자.

이미지

음악 명문가정에서 태어나 2대에 걸쳐

이미지명 : 음악 명문가정에서 태어나 2대에 걸쳐 '천재지휘자'로 불린 허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