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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필림 [Shin Film]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9분류 조직
집필자 오양열
시기1983년 10월 20일
정의
1978년 홍콩에서 영화배우 최은희와 영화감독 신상옥이 각각 납북된 후, 북한당국의 인적·물적 지원 아래 평양에서 1983년 10월 말부터 2년 5개월여 운영한 영화촬영소이다.
규모와 구성
신필림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내 백두산창작단이 쓰고 있던 사무실을 넘겨받아 사용했다.
신상옥·최은희 수기에 따르면 인원 규모는 처음에는 230명, 독일제 카메라 10대, 편집기 3대, 크레인 1대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인원 규모가 700명으로 늘어났고, 북한 당국으로부터 연간 300만 달러 정도가 지원되었다고 한다. 총장은 신상옥, 부총장은 최은희, 총장서기 김재일, 행정경리담당(총장대리)은 김연수가 맡았고, 김희봉 등 전속 영화문학(시나리오)작가 4명, 부연출 장길현, 전종팔, 부촬영 황룡철 등이 활동했으며, ‘신필림영화창작단’을 구성 운영하였다.
1986년 4월 15일 동평양에 준공 예정이었던 신필림영화촬영소는 연건평이 66,116㎡(2만평, 부지 5만 3,000평)이 넘는 규모로, 대형 스튜디오(1,322㎡, 400평) 2개, 중형 스튜디오(661㎡, 200평) 2개, 녹음실 6개, 시사실 5개을 등 갖추고 있었다. 준공 직전인 1986년 3월 신상옥과 최은희가 서방세계로 탈출하면서 시설을 이용하지는 못했다. 신필림영화창작단은 영화 제작 시 조선예술영화촬영소의 시설과 체코 국립 바란도프(Barrandov)촬영소 등 동구권의 촬영소를 이용했다고 한다. 한편 1985년도『조선중앙년감』은 ‘신필림영화촬영소는 웽그리아(헝가리)의 부다뻬슈뜨(부다페스트)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내용
1983년 10월 20일 신필림(영화촬영소)이 출범하였다. 1978년에 홍콩에서 최은희(1월 14일)와 신상옥(7월 19일)이 납북된 후 처음 5년간은 작품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신필림은 1986년 3월 초까지 2년 5개월여 운영했으며, 동유럽과 북한을 왕래하면서 영화 제작, 연출, 연기 활동을 하였다. 1986년 3월 13일 신상옥·최은희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미대사관으로 탈출하였다.
1984년 ‘제24차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최은희(연출)가 <돌아오지 않은 밀사>로 특별감독상(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하였고, 1985년 ‘제14차 모스크바국제영화축전’에서 최은희(연기)가 <소금>으로 여우주연상(연기상)을 수상하였다. ‘제28차 런던영화축전’에 참가하여 1984년 11월 28일 런던국립영화극장에서 상영하였고, 유고 ‘제15차 베오그라드국제영화축전’에 참가하여 1985년 2월 4일 싸바센터 대극장에서 상영하였다.
신상옥·최은희의 수기에 의하면 김정일은 신상옥에게 일체의 정치적인 강요나 간섭을 하지 않고 인적·물적으로 파격적인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신상옥은 실제 촬영과정에서 수시로 개입하는 북한 행정가들의 간섭과 “하루 종일 카메라만 들여다보고 있는 무능한 연출가”라는 비아냥에 대해 몹시 불쾌한 기억을 토로하고 있다. 신상옥 감독은 수기에서 <돌아오지 않은 밀사>를 크랭크인 했던 1983년 11월 7일부터 북한 탈출 시까지 7편을 직접 연출했고 13편의 제작을 지도했다고 밝히고 있다.
<돌아오지 않은 밀사>(신상옥 총지휘, 최은희 연출, 주연 인민배우 김준식, 공훈배우 김정화 등)는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밀사들의 이야기로 체코 바란도프 촬영소를 이용했다. <탈출기>는 1920년대 최서해 원작을 신필림 전속작가인 김희봉 극본, 신상옥 연출, 최은희 주연으로 영화화한 작품으로,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제작한 영화 중 가장 걸작으로 자평한 영화이다. <소금>은 강경애의 1934년작 중편소설을 리희복 각색, 신상옥 연출로 영화화한 것으로, 1985년 6월 ‘제14차 모스크바국제영화축전’에서 주인공인 최은희가 연기상(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동 영화제는 남녀배우 각 2명에게 연기상(금상)을 수여한다. <사랑 사랑 내 사랑>(1984)은 ‘춘향전’을 뮤지컬화한 것으로, 스타배우인 리학철의 상대역으로 공항 귀빈실 접대원이었던 장선희를 주인공으로 발탁한 것으로 유명하다(컬러 1부 70분, 2부 94분). <심청전>(1985)은 ‘심청전’을 뮤지컬화한 것으로, 서독 뮌헨의 바바리아촬영소에서 수중 장면을 촬영했다. <방파제>는 20리 바다를 막은 남포갑문 건설 이야기이다. <불가사리>는 고려 말(14세기 말)을 시대배경으로 한 특수촬영(SF) 영화이다
그 외 제작지도한 <길>, <철길 따라 천만리>, <헤어져 언제까지>, <약속>, <붉은 날개>, <슬픔과 기쁨을 넘어>, <조선아 달려라>, <광주는 부른다>, <임꺽정>, <홍길동>, <격침>, <이별해서 몇 년>등 13편이 있다.
중단기적 관점에서 신필림의 설립 목적은, 북한 영화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북한 영화계에 활기와 새바람을 일으키며 신인들을 육성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일은 신상옥에게 보낸 편지에서, “민족통일을 위한 멋진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 “우리나라 영화의 질을 높이고 영화인에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달라. 아울러 신인들을 많이 육성해 달라.”고 했다. 신상옥은 김정일이 국제영화제 개최를 꿈꾸었고, 그것을 위해 무엇보다도 북한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영화가 있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위해 자신과 최은희를 납치했다고 보았다.
신상옥·최은희 부부의 작품활동을 통해 북한 영화는 선전선동영화로서의 틀에 박힌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북한 영화계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영화 제목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 멜로적 성격의 영화 제작, 극적인 액션 장면이나 지주의 겁탈 장면 삽입 등 사상성 위주의 북한 영화에 서정성과 사실성의 강화를 추구했다. 특히 신상옥 감독이 제작 지도한 <철길 따라 천만리>(1984)는 북한 최초로 키스 신이 들어간 영화로, 당시 북한 사회에 커다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련어 신상옥
동의어 신필림영화촬영소, 신필름
관련연구(남) 최은석, 「‘신필름사건' : 북한 영화 ‘불가사리'와 신상옥 감독」, 『통일한국』, 제313호, 2010.
이상우, 「남북한 분단체제와 신상옥의 영화」, 『어문학』, 110집, 2010.
이춘길 외, 『북한의 영화산업 현황과 영화진흥정책 연구』, 서울: 한국문화정책연구원, 1997.
관련자료(북) 조선중앙통신사 편, 『조선중앙년감』, 평양: 조선중앙통신사, 1985.
참고자료 이명자, 『북한영화사』,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
신상옥·최은희,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 서울: 월간조선사, 2001.
이춘길 외, 『북한의 영화산업 현황과 영화진흥정책 연구』, 서울: 한국문화정책연구원, 1997.
조선중앙통신사 편, 『조선중앙년감』, 평양: 조선중앙통신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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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필림

이미지명 : 신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