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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혁명 [movie revolution]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9분류 개념
집필자 오양열
시기1970년경
정의
영화예술의 모든 영역에서 낡은 것을 뒤집어엎고 새로운 주체의 영화예술을 창조 발전시키기 위한 투쟁을 말한다.
기원
김정일은 1970년을 전후한, 이른바 제1의 문학예술혁명시기에 영화혁명을 주도했다. 1967년 5월 김정일이 당 선전선동부 영화예술과장으로 전면에 나선 후 1972년까지 당 문학예술부부장, 당 선전선동부장을 역임하면서 김일성 유일사상체계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1967년 수령형상영화 창작 전문단체인 백두산창작단을 창립하고, 이후 1970년을 전후하여 수령형상영화, 항일 빨치산투쟁을 형상화 한 수령영화, 김일성이 창작했다는 이른바 ‘불후의 고전적 명작’들을 영화로 옮기는 사업(<피바다(2부작)>(1969), <꽃 파는 처녀>(1972)) 등을 통해 영화혁명을 주도했다.
변천
1980년대 북한 영화계는 권력 전면에 나선 김정일의 관심 하에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권의 몰락과 더불어, 전반적인 정책 기조가 체제 고수를 위한 사상통제와 사상교양을 강화되고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영화계도 점차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이에 김정일은 1992년5월23일 담화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창작성과에 토대하여 문학예술건설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 를 통해, 1970년대의 제1의 문학예술혁명에 이어 1990년대에 제2의 문학예술혁명 총노선을 주창하였으나, 그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2000년대 이후 북한 영화계가 점차 회복세를 보이면서 김정일은 2009년에 당에 영화부를 신설하고 내각에도 국가영화위원회를 신설하여 ‘새로운 혁명적 대고조’와 ‘선군시대 영화혁명의 불길’을 주문했다. 2009년 영화관련 조직의 신설은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관련업무를 더욱 효율적이고 조직적으로 관리해 나감으로써, 침체기에 빠져 있는 북한영화를 진흥시켜 체제유지 차원에서 주민들에게 설득력 있는 영화를 제작·보급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2014년 5월 김정은은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5월16~17일)에 보낸 서한(〈시대의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주체적 문학예술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자〉)에서, 사람들을 교양하고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데서 영화가 차지하는 몫이 대단히 크다면서, “영화예술부분의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은 오늘의 침체상태에서 교훈을 찾고 새로운 영화혁명의 불길을 세차게 일으켜 세계영화계를 뒤흔드는 뢰성을 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용
북한은 영화를 모든 예술 가운데서 ‘가장 직관적이고 선동적이며 대중적인 성격을 띤 교양수단’으로서, 주민 대상의 교양에서 가장 힘 있고 유력한 수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영화가 별다른 사유작용 없이도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직관예술’이므로, 지식수준이 높지 않더라도 이해 가능하고 강한 호소력과 전파력이 있어 대중교양과 선전의 중요한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예술의 형태상 특성과 문학예술 전반에서 차지하는 위치로부터 이의 우선적인 발전은 문학예술혁명의 중요한 원칙이 되고 있다.
영화혁명의 과업은 영화예술분야에서 ‘사대주의, 교조주의 요소를 비롯한 온갖 낡은 것’과 투쟁하여 ‘우리 식의 영화예술’을 창조 발전 시키는 것’이 영화혁명의 목적이다. 이에 대한 세부적 요소는 다음과 같다.
첫째, 사상예술의 기초인 영화문학 창작에서 ‘주체의 인간학’을 구현해야 한다.
둘째, ‘우리 식’의 연출체계와 방법을 세워 나가고, 연출가가 창조성원들 속에서 정치사업을 확고히 앞세우는 것이다.
셋째, 배우예술에서는 사실주의적인 배우연기체계를 세우며, 배우들의 연기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넷째, 영화 형상수단들의 기능과 역할을 높이는 것으로, 촬영은 주제사상을 형상적으로 실감 있게 밝히는데 초점을 두고, 미술은 민족적인 것을 바탕으로 현대적 미감에 맞게, 음악과 노래는 영화의 내용과 장면의 요구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영화혁명의 의의는 ‘영화혁명은 영화문학, 연출예술, 배우연기로부터 촬영, 영화미술, 영화음악 등 모든 영역에 걸쳐 낡은 것을 쓸어버리고 주체의 요구를 철저히 구현함으로써, 새 시대의 요구와 인민대중의 지향에 맞는 사회주의 영화예술을 성과적으로 건설하고 영화예술을 주체의 인간학으로 되게 한다.’는 것이다.
관련연구(남) 민병욱, 『북한영화의 역사적 이해』, 서울: 역락, 2005.
관련자료(북) 김정일, 「혁명적 영화창작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1966.2.26)」, 1966.
김정일, 「혁명적 영화창작에서 나서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1968.11.1)」, 1968.
김정일, 「우리 식의 혁명적 영화창조체계를 철저히 세울 데 대하여(1971.4.28)」, 1971.
김정일, 「영화예술부문의 당사업을 더욱 강화할 데 대하여(1971.8.3)」, 1971.
허의명, 『영화예술의 혁명 전통』,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6.
「영화혁명을 수행하던 그날의 창작적 열정」, 『조선영화』, 7호, 1990.
「당의 령도따라 혁명영화 창작의 20년」, 『조선영화』, 7호, 1987.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혁명적인 영화를 더 많이 창작하자」, 『조선예술』, 11호, 1986.
김완중, 「혁명적 영화창작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게 한 불멸의 문예강령」, 『조선예술』, 11호, 1983.
참고자료 민병욱, 『북한영화의 역사적 이해』, 서울: 역락, 2005.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원, 2006.
『조선신보』, 2006년 1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