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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영화문학창작사 [Korean Scriptwriting Company]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9분류 조직
집필자 오양열
시기1948년 6월 14일
정의
예술영화문학, 기록영화문학, 과학영화문학 등 ‘영화문학’(시나리오) 창작을 전문으로 하는 북한의 중앙예술단체이다.
규모와 구성
1973년 1월에 평양시 중구역 소재의 조선영화문학창작사 건물이 준공되었으며, 창작실들과 영사실, 음악감상실, 도서실 등과 함께 정양소, 합숙소, 식당, 상점, 진료소, 온실, 테니스장 등의 후생시설들을 구비하고 있다.
권정웅(노력영웅 칭호), 신상호(1989년 김일성훈장), 리춘구(1982년 김일성훈장, 1987년 김일성상 계관인), 엄길선(1998 국기훈장 제1급), 백현우(소설가), 리희찬(1988년 김일성상) 등이 역대 사장을 맡아 왔고, 사장, 부사장, 부주필, 실장, 과장 등의 직제 하에 각 부문 문학작가 수십 명이 속해 있으며, 역대 사장 외에 주요 상을 수상한 작가로는, 김세륜(김일성상), 김은옥(6월4일문학상), 리덕윤(1998년 김일성상), 설주용(1998년 김일성상), 신운호(김일성상, 노력영웅), 위웅용(김일성상), 장유선(2002년 김일성상), 최일심(2009년 김일성상) 등이 속해 있다.
특히 북한 전역 3천여 명에 이르는 아마추어 시나리오 작가인 영화문학통신원들을 지도하는 ‘군중영화문학통신원지도실’이 설치되어 있고, 전문작가가 소속되어 있는 군중문학창작과가 중심이 되어 재능 있는 사람을 영화문학통신원으로 선발하고 강습 등을 통해 꾸준히 교육시켜 전문작가 수준으로 육성하고 있다.
각 도에 배치한 담당 심의원을 통해서도 영화문학통신원을 지도하고 있는데, 재능이 뛰어난 통신원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지도, 이들의 식견을 넓혀주고 있다. 또한 조선영화문학창작사는 해마다 작품 현상 공모(‘전국 영화문학 및 텔레비죤문학 현상모집’, ‘전국 아동영화문학 현상모집’, ‘단편소설 각색 경연’ 등)를 통해 전문작가를 선발하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초엽부터 시작된 전국 영화문학 현상모집은 노동자와 사무원, 농민과 학생 등 영화문학에 대한 전문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아마추어 출신 전문작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공모전으로 그 인기가 매우 높다.
내용
1948년 6월 14일 예술영화문학, 기록영화문학, 과학영화문학 등의 영화문학(시나리오) 창작을 목적으로 창립되었으며, 한 때 TV드라마 대본(‘텔레비죤문학’)도 창작하였으나, 현재는 ‘텔레비죤극창작단’에서 대본 창작과 제작을 병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영화문학창작사는 1948년 6월 14일 김일성 지시에 의해 창립되었다.
창립 당시에는 ‘씨나리오창작위원회’로 조직되어 이후 ‘국립씨나리오창작사’로, 다시 ‘조선영화문학창작사’로 개칭되었으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다.
국내상으로는 1983년 김일성훈장, 1988년에 3대혁명붉은기 수훈, 1998년〈대홍단책임비서〉인민상 등 다수 수상하였다.
국제상으로는 영화문학통신원 출신인 위웅용이 창작한〈먼 후날(훗날)의 나의 모습〉이 제6차 평양영화축전(1998년 9월 16일~25일) 극영화부문에서 횃불금상을 수상하였다.
조선영화문학창작사는 영화문학(시나리오) 창작을 전문으로 하며, 북한 내 20여 개의 유력한 중앙예술단체 중 하나로, 대표작은 예술영화〈조선의 별〉, 〈사령부를 멀리 떠나서〉,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 〈14번째의 겨울〉, 〈대홍단책임비서〉, 〈한 녀학생의 일기〉(2007년 제60회 칸 국제영화제 필름마켓에서 시사회),〈평양날파람〉등이 있다.
북한의 첫 예술영화인〈내 고향〉, 김일성의 모습을 처음 화면에 담은〈누리에 붙는 불〉의 대본을 창작했고, 1970년대〈꽃 파는 처녀〉,〈피바다〉,〈한 자위단원의 운명〉등을 영화로 옮기는 작업에서 큰 성과를 보였다.
조선영화문학창작사는 중앙예술단체 중 하나로,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영화 및 방송음악단과 함께 영화 창조를 위한 3대 기둥의 하나라고 불리고 있으며, 여러 명의 김일성훈장 수훈자, 김일성상 계관인, 2중노력영웅, 노력영웅 등 관록 있는 작가들을 다수 배출한 영화문학 창작의 ‘위력한’ 거점이다.
중앙예술단체는 행정체계상 문화성 소속으로 일상적인 예술활동에 관해 문화성에 보고하고 일부 지시를 받기도 하나, 문화성은 단체의 제작계획과 수행과정 등을 형식적으로 통보받거나 승인해주는 들러리 역할을 하는데 불과하며, 중앙예술단체의 정치활동은 당 조직지도부가, 기본적인 예술활동은 당 선전선동부가 직접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위축된 영화산업을 육성하고자 2005년 영화부문 창작가, 예술인의 집중학습을 실시한데 이어, 2006년에는 영화부문 조직을 재정비하고 제작 장비의 디지털화 등 영화제작 체제 개편작업을 단행하였다. 특히 2000년대 중반에 영화문학 작가, 애니메이터, 연기자 등 인적 자원의 세대교체와 ‘영화인 후비’(차세대 영화인) 육성에 힘을 기울인 결과, 오늘날 북한 영화문학 창작계에는 이미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20대, 30대의 신진작가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조선신보』(2006년 12월 24일)는 북한의 1세대 영화문학작가들이 사망하거나 은퇴하면서 “지금 영화문학 창작계에는 신진작가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들이 영화문학 창작의 미래를 걸머지고 있다”면서, “조선영화문학창작사의 신진작가들은 대체로 20~30대이다”라고 밝혔다.
동의어 영화문학창작사, 시나리오창작위원회, 국립시나리오창작사
관련자료(북) 김정일, 「〈조선영화문학창작사〉에 대한 지도사업을 잘하기 위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1967.6.30)」, 1967.
「조선영화문학창작사 창립 50돐 기념보고회」, 『조선예술』, 5호, 1998.
참고자료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편, 『북한 예술단체 총람』, 서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편, 『문예연감』, 서울: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2~2013.
『조선신보』, 2006년 12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