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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예술영화촬영소 [Korean Arts Movie Studio]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9분류 조직
집필자 오양열
시기1947년 2월 6일
정의
북한 최대의 영화촬영소로, 예술영화(극영화)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내각 문화성 소속의 기관이다.
규모와 구성
부지면적 100만㎡, 연 건축면적 10만㎡의 대규모 실내 촬영장 및 야외 촬영장(1982년 4월 조성)을 갖추고 있으며, 외국인 대상의 관광코스로도 활용하고 있다. 전체인원은 1,800명으로, 이 중에는 제작진 외에 탁아소 및 후방사업 요원(식량, 의복 등 배급품수령과 보급 담당)까지 포함되어 있다.
4개의 대형 촬영장과 야외 촬영거리, 배우양성소를 두고 있다. 이 촬영소에는 실내촬영장, 녹음 및 편집설비, 필름가공설비 등 현대적 시설들을 구비하고 있으며, 10여개의 창작단이 같은 시간에 촬영, 녹음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이곳에는 조선조에서 일제에 이르기까지의 촬영세트와 옛 초가마을, 해방전 거리, 백두밀영, 량강마을, 한국거리와 함께 중국, 일본, 미국 등의 거리 풍경도 반영구적으로 설치해 놓고 있으며, 규모는 80만㎡에 달한다.
내용
김일성의 주체적 문예사상과 김정일의 주체적 문예이론을 지침으로 하여 “시대의 요구와 인민의 지향에 맞는 다양한 주제의 사상예술성이 높은 영화작품을 창작함으로써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에 힘 있게 이바지”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47년 2월 6일 국립영화촬영소로 출범하였으며, 평양시 형제산구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평양시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약 16㎞ 떨어진 곳에 있다. 6.25 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것을 1954~1955년에 복구했으며, 복구과정에서 촬영용 스테이지 확장과 스크린 프로세스 신축 공사를 하였다. 설립과정을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초기에는 주로 기록영화에 치중하였다.
1949 북한 최초의 예술영화<내 고향>제작
1955 촬영용 스테이지 확장과 스크린프로세스 신축 공사
1957 기록영화 부문 분리와 함께 예술영화 창작 전담
1966 배우양성소 운영 시작
1982 야외촬영소 확장 공사
국내상으로는 1972년 2월 국기훈장 1급, 1972년 4월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국제상으로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가 제작한 <먼 후날(훗날)의 나의 모습>이 1998년 9월 제6차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고상인 홰불(횃불)금상을 수상하였다.
제작한 영화를 살펴보면 1949년 북한 최초의 예술영화<내 고향>을 비롯하여 김 부자 위대성 선전, 당 정책 해설, 노동의욕 및 혁명성 고취 등을 주제로 한 예술영화가 주종을 이룬다.
창작단별로 10여 명의 연출(책임연출과 부연출)이 있으며, 경제난 이전의 경우 1년에 약 3~40여편 정도 제작하여, 카피본을 2~3백 벌 정도 떠서 배급과 상영은 영화관리국 산하배급소가 관장해 왔다. 배우양성소는 1966년 4월부터 1년 과정으로 운영, 당의 문예정책, 마르크스 레닌주의 미학이론, 실기 등의 교과목을 강습했으나, 현재에는 운영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주 목요일 오전에는 촬영소 소속 배우들이 대사 소화능력, 연기력 향상 등을 위해 기량발표회를 갖고 있다.
북한 최대의 영화제작소로서 주로 북한이 주장하는 혁명전통, 사회주의 건설을 소재로 한 예술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이 촬영소가 제작한 작품으로는 <정방공>, <유격대 5형제>, <조선의 별>,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민족과 운명”시리즈 등이 있으며, 김정일이 주도한 ‘제1의 문학예술혁명’ 시기에 북한이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 칭하는 혁명가극들인<피바다>, <한 자위단원의 운명>, <꽃 파는 처녀>를 각각 1969년, 1970년, 1972년에 영화로 옮겼다. 최근 작품으로는 2010년에 <동해의 노래(제1, 2부)>, <시대가 주는 이름>, <내가 본 나라(제4, 5부)>, <형제의 정>, <그는 탄부였다>, <복 받은 대지에서>, <행복의 수레바퀴>등과, 2011년에 <성강의 파도(제1, 2부)>, <맹수 사냥군(사냥꾼)>, <인민이 너를 아는가>, <미결건은 없다>, <눈 속에 핀 꽃>, <소원>등의 작품이 있다.
관련어 조선4.25예술영화촬영소, 조선과학영화촬영소, 조선기록영화촬영소, 배우양성소
관련연구(남) 민병욱, 북한 영화의 제작과 수용과정 연구, 한중인문학연구, 17집, 2006.
이경수, 북 영화의 산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민족 21, 100집, 2009.
관련자료(북) 김정일,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종업원궐기모임에서 한 연설(1970.5.7)」, 1970.
김정일,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책임일군들과 한 담화(1970.6.6)」, 1970.
김정일, 「예술영화촬영소 사업을 개설할 데 대하여(1974.10.1)」, 1974.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편, 『문학예술사전 중』,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1.
「위대한 령도와 숭고한 사랑으로 수놓아진 영광의 서른 다섯 해-조선예술영화촬영소 창립 35돐을 맞으며」, 『조선예술』, 2호, 1982.
참고자료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편, 『북한 예술단체 총람』, 서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전영선,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예술인들』, 서울: 역락, 2004.
조순래 외, 『북한용어소사전』, 서울: 연합뉴스, 2003.
문화체육부, 『북한의 예술인·시설·단체』, 서울: 문화체육부, 1996.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편, 『문학예술사전 중』,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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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예술영화촬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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