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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애 [Yu Kyongae]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 영화배우
9분류 인물
집필자 이명자
출생일1920년 6월 23일
사망일2007년 1월 30일
출생지강원도 춘천시 아동리
정의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이자 방송극 화술배우(성우)로 방송발전에 이바지한 월북배우이다.
내용

춘천에서 태어난 유경애는 6살에 어머니를 잃고 홀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춘천 정명여학교 졸업 후 개성 남성병원 간호사로 일하던 중 1938년 서울로 올라와 극단 청춘좌, 고협, 성군 등을 전전하며 심부름을 해주다가 배우로 발탁되었다. 유경애는 인물이 곱지 못하다는 이유로 단역이나 무대 뒤에서 대본을 읽어주는 일을 주로 하였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화술로서 성공하겠다고 생각해 목소리 훈련에 집중하였다. 서울에서 활동 당시 연극 <정어리>, <등잔불>, <의기 논개> 등에 출연하였고 <옥낭>, <성군>, <예술 극장>에서 주역을 맡았으며 <가족>으로 연기상을 받았다. 박학, 황영일, 김세영 등과 <장백산>을 공연하다 우익세력에 의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1948년 8월 월북하여 북한 최초의 예술영화 <내 고향>에서 관필의 어머니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에 있는 동생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젖먹이 아이 하나만 데리고 <내 고향>에서 순칠 역을 했던 남편 류현과 함께 전선위문공작대로 활동했다. 서울해방경축 문화공작대로 남편과 함께 인민군대를 따라 대구까지 갔다가 대전으로 갔는데 행군 도중 비행기 폭격을 받고 남편이 사망하였다.
이후 함북도립예술극장 국립연극단, 남 연극단에서 활동했다. <내 고향>에서 당시 29살로 어머니 역을 맡아 호평을 받은 이후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비류강의 새 전설>에서도 어머니 역을 맡아 ‘어머니 역으로 유명해진 배우’라는 평을 들었다. 해학적이고 유머 있는 연기도 잘해 <붉은 선동원>(1962)에서 리복선과 <잔치날>의 장진누이 역을 연기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활동하며 <내 고향>, <심청전>(1957), <붉은 선동원>(1962), <잔칫날>(1973),<우리 처갓집 문제>(1980), <봄날이 눈석이>(1985), <준엄한 봄>(1985), <온달전>(1986) 등의 작품에 출연하였다.
중앙방송위원회 성우로도 활동했는데 화술이 뛰어나 ‘스무 가지 소리를 내는 배우’로 불리기도 했다. 특히 소설 낭독에 남다른 재주가 있어 라디오 심야방송시간에 유경애가 읽어주는 소설은 대중적으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유경애가 낭독한 소설은 해방 후 리기영의 <땅>에서 시작하여 1980년대 장편소설 <충성의 한길에서>까지 아우른다. 김일성이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를 가진 배우라고도 알려져 있다. 2007년 1월 30일 86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1980년 김일성훈장, 1985년 9월 인민배우 칭호, 1993년 4월 로력(노력)영웅 칭호를 받았다. 북한의 영화 및 방송 사업 발전에 이바지한 배우라고 평가된다.
관련어 조선예술영화촬영장, 노력영웅, 김일성상, 인민배우
관련자료(북) 유경애, 「수기: 그날은 꼭 오고야말리라」, 『조선영화』, 7호, 1993.
「공화국의 품속에서」, 『조선영화』, 9호, 1988.
소희조, 「삶을 빛내여주시여」, 『조선예술』, 4호, 2007.
참고자료 「예영인물소묘실」, 『예술영화』, 5호, 1948.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2006.

이미지

유경애

이미지명 : 유경애

유경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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