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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준 [Yu Wonchun]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 영화배우
9분류 인물
집필자 이명자
출생일1919년
사망일1998년 6월 10일
출생지함경남도 함흥시 자박리
정의
북한 영화사 초기부터 1990년대 까지 북한을 대표하는 영화배우이다.
내용

함흥의 가난한 막벌이꾼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유원준은 어려서부터 배우들의 흉내를 내며 연극배우의 꿈을 키웠다. 1946년부터 연극 무대에 섰고 해방 2주년 예술축전에서 연기상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1947년 12월부터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발탁되었다.
북한의 첫 예술영화인 <내 고향>의 관필 역으로 영화에 데뷔한 이래 <밝은 태양 아래에서>의 인민군 사단장역, <최학신의 일가>에서 목사 최학신 역, <춘향전>에서 변학도 역, <위대한 품>에서 김구 역 등 악역, 선한 역, 노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할을 연기하였다. “민족과 운명” <로동계급편>을 찍을 당시에는 80대의 고령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강태관 역을 맡아 열연하였으며 이 영화의 마지막 부 수정 촬영을 하던 도중 쓰러져 병원에 실려가 1998년 6월 10일 사망하였다. 시신은 애국열사릉에 안치되었다.
최초의 예술영화에서 주인공을 맡은 후 <최학신의 일가> 등 북한 영화사의 중요한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하며 안정적인 경력을 이어간 유원준은 나이가 들어서는 북한에서 푸근하고 인자한 아버지상을 연기해 남한의 김승호나 최불암과 비견할 수 있다. 사망 후 배우로서는 드물게 <인민배우 유원준>(1999)이라는 기록영화가 제작될 정도로 북한 영화사를 대표하는 배우라고 할 수 있다.
1991년 조통연합 북측본부 중앙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인민배우와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고, 1987년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출연작은 <내 고향>(1949), <최학신의 일가>(1966), <밝은 태양아래에서>(1969), <춘향전>(1980), <생명수>(1985), <평범한 사람>(1985),<북산땅의 주인>(1987), <심장에 남는 사람>(1989), <잊을 수 없는 추억>(1989), <아무도 몰라>(1990), <하랑과 진장군>(1992), “민족과 운명”<로동계급편>(1998)이 있다.
<춘향전>, <밝은 태양아래에서>는 연출도 겸했다.
관련어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인민배우, 노력영웅, 김일성훈장
관련자료(북) 유원준, 「끝없는 충성심을 본받겠다」, 『조선예술』, 1호, 1978.
유원준, 「민족고전물영화를 우리 시대 미감에 맞게 창조하기까지-예술영화 <춘향전>을 연출하고」, 『조선예술』, 4호, 1980.
유원준, 「당과 혁명에 대한 불타는 충성심을 가지고」, 『조선예술』, 12호, 1980.
「위인의 품속에서 영생하는 삶- <김일성훈장> 수훈자이며 로력영웅인 배우 유원준」, 『조선예술』, 2호, 1999.
「배우수첩: 연기형상의 제곬을 찾기까지」, 『조선영화』, 4호, 1986.
유원준, 「수기:인생의 리정표」, 『조선영화』, 7호, 1993.
기록영화 <인민배우 유원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참고자료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2006.
백과사전종합출판사 편, 『광명백과사전』, 평양: 백과사전종합출판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