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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룡규 [Yun Ryongkyu]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 영화연출가
9분류
인물
집필자
이명자
출생일
1913년
사망일
미상
출생지
경상북도 대구
정의
월북한 영화연출가이다.
내용
1913년에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1939년 무렵 일본 도호(東寶) 영화사 연출부에 입사하여 도요타 시로(豊田四郞)로부터 연출과 이론을 배웠다. 해방 후 1946년 12월 24일 결성된 ‘조선영화동맹’ 서울지부 집행위원으로 김소영, 최금동, 박누월과 함께 선출되었다. 1949년 함세덕 원작의 『동승』을 영화화한 <마음의 고향>의 연출을 맡으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곽일병 각색, 한형모 촬영으로 이루어진 영화는 동승 도념이 절에 불공드리러 온 미망인을 보고 자신을 버린 어머니라고 여기며 어머니를 그리는 사모곡이다. 미망인으로 최은희가 출연한 <마음의 고향>이 남긴 인상이 강해 윤룡규는 지금도 남한에서는 ‘마음의 고향 감독’으로 불린다.
6.25 전쟁 중 납북과 월북이라는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1952년 북한의 국립영화촬영소에서 연출가로 일하기 시작해 1950년대 북한 영화계에서 매우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다. <향토를 지키는 사람들>(1953), <소년 빨찌산>(1951), <빨찌산의 처녀>(1954), <신혼 부부>(1955), <어랑천>(1957), <수리봉>(1958), <단결의 노래>(1959), <춘향전>(1959, 1980), <녀성 영웅 광부>(1960), <가야금에 깃든 사연>(1986) 등의 작품을 연출하였다. 윤룡규는 두 번에 걸쳐 <춘향전>을 연출하였는데 1959년에는 김승구의 시나리오를 단독 연출하였고, 1980년에는 백인준, 김승구가 쓴 시나리오를 배우 유원준과 함께 공동 연출하였다. 1951년 그가 연출한 <소년 빨찌산>이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에서 ‘자유를 위한 투쟁상’을 수상하면서 윤룡규는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회로부터 국가훈장 제3급을 수여받았다.
1955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발탁되었으며, 1964년에는 중앙위원이 되었다. 1964년부터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에서 배우로도 활동해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 같은 해 조선영화인동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 및 조선문학예술 총동맹중앙위원이 되었으며,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관련어
공훈배우
,
공훈예술가
동의어
윤용규
관련자료(북)
「국제영화축전에 참가하였던 영화예술인 대표 일행 귀국」, 『로동신문』, 1951년 10월 8일.
참고자료
김종원 외, 『한국영화감독사전』, 서울: 국악자료원, 2004.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친일인명사전3』,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2009.
<한국영상자료원 데이터베이스>, http://www.kmdb.or.kr, 검색일: 201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