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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전쟁 [War of Justice]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 기록영화
9분류 작품
집필자 이명자
시기1951년
제작자천상인 연출, 국립영화촬영소
정의
6.25 전쟁 시기 제작된 북한의 대표적 기록영화이다.
내용

<정의의 전쟁>은 북한에서 1단계로 분류되는 전쟁 초반기 상황을 다루고 있다. 남북한을 대비하는 방식으로 보여주는 영화는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영화의 앞부분에서는 민주 건설기의 북한의 모습과 미 군정기의 남한의 현실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미국이 6.25 전쟁 이전에 이미 어떻게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준다. 둘째 부분에서는 전쟁에 나선 인민의 염원과 제의를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김일성의 전투적 호소에 감응한 인민대중들이 전선과 후방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6.25 전쟁 중 홍성빈, 조창서 등 여러 명의 카메라맨이 찍어온 6.25 전쟁 이미지를 편집하여 여기에 화면 밖 해설자가 설명을 입힌 방식(voice over narration)의 고전적 다큐멘터리이다.
전쟁 시기 북한에서는 기록영화 23편, 시보 영화 83편이 만들어졌는데 주제별로 미국에 대항한 애국적 투쟁을 다룬 영화, 미국의 만행을 폭로한 영화, 인민대중의 승리를 묘사한 영화, 행사관련 영화로 나눈다. 미국이 1950년 7월 공식적으로 참전을 결정하자 북한은 이번 전쟁을 북한 대 미국의 구도로 재정립했다. 북한은 미국의 참전으로 약세의 처지에 있음을 세계에 호소하기 위해 당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영문판으로 제작해 유엔 등 국제사회에 보내 적극적으로 반제국주의에 맞서는 약소국가 북한의 이미지를 선전했다. 그리고 이후 북한의 다큐멘터리는 미 제국주의로부터 남한을 해방시키는 주제로 수렴되었다. <정의의 전쟁>은 첫 번째 주제 군에 속하는 대표적 영화로 북한은 전 세계에 6.25 전쟁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이 영화를 영문판으로 제작해 배포하기도 했다. <정의의 전쟁>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개최된 제7차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서 기록영화상을 수상했다.

<정의의 전쟁>은 종군 영화인들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북한에서 종군 영화인의 조직은 김일성의 호소로부터 시작되었다. 전쟁 발발 다음 날인 6월 26일 김일성은 방송을 통해 ‘모든 힘을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모아야 함을 역설한 후 1950년 7월 작가 예술인들과의 만남에서 작품에 인민들의 숭고한 애국심과 견결한 투쟁의지, 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뚜렷이 표현하기 위하여 직접 전선에 나갈 것을 종용했다. 이로써 종군 창작활동이 시작되었다. 종군 영화반은 12개로 조직되어 각종 시보 영화 및 기록영화를 제작했다. 종군 영화반에 소속된 영화인은 천상인, 전동민(연출), 박학(배우), 박병수(촬영)와 시보 영화에는 정규완, 리희성, 김인현, 최순홍, 홍인성 (촬영) 등 다수로 이들에 의해 기록영화 23편과 다수의 시보 영화가 제작되었다. 종군 문학과 더불어 종군 영화반이 조직되고 연예 공작대, 이동 예술대 등이 소편대로 조직되어 소편 대공연을 기본으로 하는 전시 공연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김일성의 이름이 찍힌 ‘종군 파견장’을 받았으며 안전을 위해 인민군과 같은 군복을 입고 전투 상식도 배우고 군사칭호를 받기도 했다. 그리하여 어떤 종군 작가는 군복에 영장을 달고 탱크에 올라가 조종사의 사기를 고무하기도 했고 ‘모터찌클’을 타고 활동하는 작가도 있었다. 전선 서부에 파견된 작가들은 서울을 거쳐 대전으로 그리고 낙동강 전투까지 참가하였으며 동부와 중부에 파견된 작가들은 춘천, 원주, 강릉, 소백산, 영천을 거쳐 포항, 팔공산, 금호강의 최전선 전투에 참여했다.
전시의 예술인들을 동원하기 위해 1951년 ‘창작기금 설정에 대하여’라는 내각결정을 채택해 천여 명의 작가, 예술가들에게 국가 수훈을 주었고 1952년 5월에는 ‘무대예술인들을 우대할 데 대한 내각결정’을 채택하고 6월에는 인민배우, 공훈배우, 공훈예술가 칭호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정해졌다. 또한 1953년 1월 하순에는 ‘조선인민군창건5돌기념 전국문학예술상’을 내각결정으로 제정하여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보상을 실시하는 등 예술인들의 이탈을 막고 문화선전에 활용하는데 주력했다. 그 결과 1951년 고형규, 유만춘, 홍성빈, 최순홍, 홍성일 등 다섯 명의 촬영기사에게 국기훈장 3급이 수여되었고 그 외 8명에게는 군공 메달이 수여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춰 영화인들은 1951년 4월 6일 평양에서 영화예술인 열성자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는 심영, 문예봉, 박학 등 150여 명의 영화예술인과 김오성 문화선전성 부상, 조기천 조선문예총 부위원장, 중국영화연출가인 김산도 입석했다. 이들은 북한주민들의 영웅적 투쟁모습을 훌륭히 형상화 할 데 대한 창조적 의욕과 결의를 피력하였으며 제작 중인 3편의 극영화를 1951년 5월 내에 완성할 것을 다짐했다.
그 결과 나온 영화 가운데 하나가 <정의의 전쟁>으로 6.25 전쟁을 다룬 북한의 가장 대표적 기록영화이다. 1951년 7월 ‘제6차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에서 영예의 상장을 받았다.
관련어 천상인, 국립영화촬영소
관련연구(남) 이명자, 「전쟁경험의 재구성을 통한 국가만들기」, 『통일문제연구』, 제23권2호, 2011.
관련자료(북) 국립출판사, 『조국통일민주주의 전선 문헌집』, 평양, 1954.
김선려·리근실·정명옥 저, 『조선문학사:11 해방후 편(조국해방전쟁시기)』,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94.
김일성, 『김일성 저작집』, 평양, 1980.
『로동신문』, 1951년 8월 3일.
소희조,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영화예술(2)-조국해방전쟁시기 영화예술사 조직령도」, 『조선영화』, 6호, 1997.
사회과학원력사연구소, 『조선전사 27:현대편, 조국해방전쟁사3』, 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1.
참고자료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편, 『문학예술사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72.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편, 『문학예술사전 상』,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8.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원, 2006.
백과사전종합출판사 편, 『광명백과사전』, 평양: 백과사전종합출판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