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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인 [Chon Sangin]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 영화연출가
9분류 인물
집필자 이명자
출생일1923년 3월 11일
사망일1969년 5월 16일
출생지함경남도 금야군
정의
1950~1960년대를 대표하는 북한의 영화감독이다.
내용

1923년 함경남도 금야군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다니고 서울에서 중학교를 마친 후 일본에서 고학으로 미술을 전공하였다. 귀국 후 1946년 입당하고 강원도 도당학교를 나와 당기관에서 일하면서도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천상인은 1947년 북조선국립영화촬영소에서 연출가로 일하게 되었다.
기록영화 <남북련석회의>(1948) 연출을 시작으로 <승리의 5.1절>, <1948년 8.15>, <민주 조국>, <제2차 세계 청년대회>, <1949년 8.15>, <수풍 땜>, <승리의 5월> 등 기록영화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6.25 전쟁기에는 종군 영화인으로 참전해 한국전쟁 기록영화 <전 세계에 고함>(1950), 예술영화 <또 다시 전선으로>를 연출해 기록영화 촬영과 감독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 후 예술영화(극영화)연출로 방향을 전환해 <다시는 그렇게 살 수 없다>(1956), <두만강>, <벗들이여 우리와 함께 가자>, <축배>, <붉은 꽃>, <량 반전>, <폭풍 시절>, <싸움의 길은 끝나지 않았다>, <미래를 사랑하라>, <인민 교원>과 같은 작품을 남겼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연출 실장을 지냈으며 1968년 4월부터 조선 2.8예술영화촬영소(당시)의 연출가로 활동하였다.
편집과 구성에서 재치 있는 연출가, 팔방미인 격의 연출가로 평가받았던 천상인의 작품은, 주요 화면에 강한 편집적 역점을 찍는 강한 편집 논리와 극적 집중화를 특징으로 한다. <사회주의 조국을 찾은 영수와 영옥이>의 창작 도중 쓰러져 불과 46세에 불치의 병으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딸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화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3년 공훈배우 칭호를, 1964년 김일성표창장을 받았다. 연출작 <정의의 전쟁>과 <또 다시 전선으로>가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각각 ‘영예상’과 ‘자유를 위한 투쟁상’을 수상하였다. 또 다른 연출작 <인민 교원>은 북한에서 처음으로 인민상 계관작품이 된 영화이다.
관련어 공훈배우,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
관련자료(북) 「영화의 력사를 거슬러: 당의 품과 영화연출가 천상인」, 『조선영화』, 4호, 1986.
「이름있는 영화연출가 천상인」, 『조선영화』, 3호, 1996.
참고자료 『문예상식』, 평양: 문학예술출판사, 1994.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편, 『문학예술사전 상』, 평양: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8.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2006.
백과사전종합출판사 편, 『광명백과사전』, 평양: 백과사전종합출판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