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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남 [Kong Kinam]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음악 > 민족음악 > 성악가
9분류 인물
집필자 배인교
출생일1917년 9월 4일
사망일1971년 5월 8일
출생지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신성리
정의
6.25 전쟁시기 월북하여 국립민족예술극장, 황해북도예술단 등지에서 활동한 전통음악인이다.
용례/관용구
“공훈배우 공기남은 우리 나라 창극의 주요한 극중 인물들의 배역을 담당하여 자기의 높은 예술적 기교를 보여 준 창극 배우이다.” 「무대 예술인들에게 공화국 공훈 배우 칭호를 수여: 공훈 배우 신우선, 공훈 배우 공기남」, 『조선음악』, 제11호, 1960.
내용
1917년 전라남도 화순 출신이며, 박동실과 같이 박유전-이날치-김채만으로 이어지는 서편제 명창 계보를 가지고 있다. 김채만의 제자였던 아버지 공창식의 소리는 공기남을 거쳐 공옥진으로 이어지다 끊어졌다. 1938년부터 1950년까지 창극단 및 음악연구회 등에서 활동하였으며, 화랑창극단에서 창극활동을 하면서 월북한 조상선과 친분을 맺었다. 1950년 7월 조선의용군에 입대하면서 북한에서 활동하기 시작하였는데, 1950년부터 1952년까지 국립예술극장 고전악단 단원으로 활동하였고 1952년부터 1962년까지 국립민족예술극장 창극단 단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63년부터는 황해북도예술단에서 활동하였다.
월북 이후 공기남은 창극의 주요 배역을 담당하여 활동한 창극배우로 알려졌다. 창극 <춘향전>에서의 이도령, <선화공주>에서의 서동, <심청전>에서의 중, <흥부전>에서의 놀부역을 맡았다. 그리고 안기옥이 1959년에 판소리와 비슷한 창극 스타일로 만든 창극 <황해의 노래>에서 지주 역을 맡기도 하였다. 또한 남성 중창 <장군님 오시니>와 독창 <항일의 싸움터를 찾아서>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1967년에는 박동실이 주도한 판소리 5바탕 보존녹음사업에 참여하여 녹음을 한 바 있다.
수훈 및 표창 내역을 살펴보면, 무대예술 창조활동의 공로로 공로메달, 국기훈장 2급과 3급을 받았으며, 1960년 10월 12일 공훈배우가 되었다.
관련어 월북국악인, 공훈배우
관련연구(남) 배인교, 「1950~60년대 북한 전통 음악인들의 활동 양상 검토: 창극 관련 음악인을 중심으로」, 『판소리연구』, 제28집, 2009.
참고자료 김덕균·김득청 외, 『조선민족음악가사전 상』, 연길: 연변대학출판사, 1998.
『조선음악』, 11호, 1960.

이미지

공기남

이미지명 : 공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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