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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희 [Chong Namhui ]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음악 > 민족음악 > 연주가
9분류 인물
집필자 배인교
출생일1905년 7월 19일
사망일1984년 3월 17일
출생지전라남도 나주군 다시면 신정리
정의
월북국악인으로 가야금의 명수이자 교육자로, 북한 가야금연주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용례/관용구
“국악원에는 피난을 못간 수많은 국악인들이 나와 있었다. 오태석(吳太石), 조상선(趙相善), 오양금, 정남희(丁南希), 임소향(林小香) 등이었다.” 박록주, 「나의 이력서 27」, 『한국일보』 1974년 2월 13일.
내용
정남희는 8세 때부터 가야금을 한덕만에게 배웠으며, 16세부터는 협률사에 들어가 연주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1924년에는 안기옥에게 김창조가야금산조를 전수받았으며, 1927년까지 9년간 전남 여수의 음악양성소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정남희는 가야금병창, 가야금산조, 민요, 판소리, 단가 등의 레퍼토리로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였으며, 콜롬비아, 빅타, 폴리돌, 오케 등에서 음반을 취입하였다.
1930년대에는 조선성악연구회에서 창극활동을 하면서 <흥보전>, <춘향전>, <숙영낭자전>, <심청전> 등에 출연하였다. 1945년 해방 이후 대한국악원에서 박동실, 조상선, 오태석, 박록주, 임소향, 김소희 등과 활동하면서 가야금산조를 완성하였다.
1950년 6.25 전쟁 기간 중에 월북하여 평양의 국립예술극장 협률단에서 활동하였으며 창극 <리순신장군>, <춘향전> 등의 작품 창작에 참가하였다. 1951년부터 진행된 중국과 소련, 유럽 사회주의국가에서 순회공연을 하는 조선예술단의 가야금독주가 혹은 부단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세계청년학생축전에도 참가하였다. 또한 이 시기에 안기옥과 함께 가야금2중주 <안땅산조>를 내놓아 절찬을 받았다.
1952년 12월에 북한의 첫 공훈배우가 되었으며, 1959년에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1959년부터 평양음악대학 민족음악학부 교원과 학부장을 역임하였으며, 안기옥과 함께 『가야금교측본』을 출판하였다. 또한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민요연구실 연구사로 있으면서 민요를 수집 정리하는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의 수제자였던 김길환(평양음악무용대학 교원)의 채보와 정리로 1992년에 『가야금산조 1』(평양: 예술교육출판사)이 출판되었다. 또한 2005년에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인민배우 정남희 생일 100돐 기념 가야금연주회’가 열리기도 하는 등 북한 가야금연주의 기반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관련어 월북국악인, 공훈배우, 인민배우, 평양음악대학
동의어 丁南希
관련자료(북) 장영철, 『조선음악명인전 2』, 평양: 윤이상음악연구소, 2000.
김길환, 『가야금산조 1』, 평양: 예술교육출판사, 1992.
참고자료 김덕균·김득청 외, 『조선민족음악가사전 (상)』, 연길: 연변대학출판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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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희

이미지명 : 정남희

정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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