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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상 [Yun Isang]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음악 > 양악 > 작곡가
9분류 인물
집필자 노동은
출생일1917년 9월 17일
사망일1995년 11월 3일
출생지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덕산리(현 행정명으로 사리)
정의
한국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로, 남북화해와 민족음악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내용
1932년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언어 명료하고 창가(唱歌, 노래)에서 특출한 수재로 두뇌가 뛰어난 어린이”로 평가받은 윤이상은 1935년 일본 오사카음악학원(大阪音樂學院)에 등록하여 작곡과 첼로를 공부하였지만, 조기 귀국하였다. 1937년 윤이상의 첫 동요집 출판에 이어 1940년 신학기에 동경에서 일본 최초의 파리국립음악원을 수료한 이케노우치 토모지로우한테 작곡 공부를 했지만 태평양전쟁으로 귀국하였다. 해방이 되자 민족문화 창출을 목표로 통영문화협회 설립, 1947년 통영현악4중주단 조직, 가곡집 『달무리』를 발행한 윤이상은 1953년에 서울로 진출, 서울대학교 예술학부 등에서 작곡을 가르쳤다. 서울특별시문화상을 받은 1956년에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작곡과 음악이론, 독일의 베를린음악대학에서 작곡 전공으로 졸업(1959)하였다. 이 해에 독일의 다름슈타트 현대음악제에서 발표된 작품이 호평을 받았고, 특히 1966년 독일의 도나우싱엔 현대음악제에서 <대관현악을 위한 예악> 발표로 세계적인 작곡가로 주목받았다. 1967년 ‘동베를린사건’에 연루되어 2년간 복역하였다. 이후 하노버 음악대학 작곡교수(1970~1971), 1971년 독일 국적 취득, 1972년 오페라 <심청>의 대성공으로 세계적인 작곡가의 명성을 얻었다. 베를린음악대학 교수 역임(1977~1987), 튀빙겐 대학 명예박사학위(1985), 킬 문화상(1970), 그리고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 훈장(1987)을 받았다. 1982년부터 평양에서 매년 윤이상음악회 개최, 1984년 9월 평양 윤이상음악연구소를 설립하였다. 1990년 10월, 평양에서 분단 45년 만에 남북음악인들과 해외 동포음악예술들이 처음으로 모인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성사시킨 당사자로 남북화해와 민족음악 발전에 큰 공을 세웠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오페라 <나비의 꿈>, <심청>을 비롯한 네 편의 오페라, <예악>, <화염에 휩싸인 천사와 에필로그> 등 20여 편의 관현악곡, 그 밖에 40여 편의 실내악곡과 교성곡 등 1백 50여 편이 있다. ‘음악을 통한 세계통합의 위대한 업적’과 ‘동서양의 음악세계를 유일하게 종합’한 음악인 윤이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관련어 윤이상통일음악회, 범민족통일음악회, 윤이상음악연구소
관련연구(남) 최성만·홍은미, 『윤이상의 음악세계』, 서울: 한길사, 1991.
관련자료(북) 노동은, 『한국음악론』, 파주: 한국학술정보, 2002.

이미지

윤이상

이미지명 : 윤이상

윤이상2

이미지명 : 윤이상2

윤이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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