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검색 결과 바로가기
사전소개
사업자 소개
집필자 소개
연구진 소개
게시판
공지사항
자료실
기타
검색안내
저작권정책
키워드 검색 검색영역 시작
검색어
상세검색버튼
상세검색영역 시작
키워드검색
용어
AND
OR
시기
AND
OR
내용
AND
OR
9분류
전체
개념
시설
인물
작품
조직
행사
매체
문건
기타
취소
동의어검색
검색어
※ 용어에 대응하는 관련어, 동의어, 대응어를 체계적으로 표시하여 서로간의 관계 확인이 가능합니다.
취소
디렉토리 검색
가나다 색인
검색 결과 영역
HOME > 디렉토리 서비스 >
가나다색인
이전
다음
A+
A-
인쇄
조선음악가동맹 [Korean Musicians' Union]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음악 > 공통 > 공통
9분류
조직
집필자
노동은
시기
1946년 3월 25일
정의
문예총의 단위동맹 중 하나인 조선음악가동맹은 북한의 음악인들로 조직된 사회단체로, 북한체제의 특성상 당 선전선동부와 내각 문화성의 산하기관 성격을 갖는다.
규모와 구성
평양음악대학과 각 도의 예술대학 교원들을 비롯하여 국립교향악단·만수대예술단·국립민족예술단 등의 중앙음악단체와 지방의 각 시도 예술단에서 활동하는 전 음악인 5천여 명의 규모를 가졌다. 정맹원 3천여 명과 후보맹원 2천여 명으로 구성되었다. 후보맹원들은 각 음악소조원 출신들로 경력과 기량이 뛰어나 정맹원으로 심사를 앞두고 있는 음악인들이다. 조선음악가동맹은 중앙위원회와 도(시)위원회와 평론분과·가요분과·기악분과·군중음악분과·아동음악분과·극음악분과·연주분과 등 7개 분과위원회로 구성된다.
내용
조선음악가동맹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주체적 문예사상’을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당의 지도 밑에 음악가들에 대한 사상교양과 예술교양사업을 조직 진행할 것을 사명으로 하는 단체이다. 1946년 3월 25일 평양에서 결성한 ‘북조선예술총연맹’의 산하조직으로 ‘북조선음악건설동맹’이 시군에 걸쳐 조직되었다. 1946년 10월에 북조선예술총련맹이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으로 개칭되며 조직과 사업을 강화하면서 산하의 음악건설동맹도 ‘북조선음악동맹’으로 개칭되었다. 이 시기의 중앙위원회는 리면상 위원장과 부위원장 김태연 외 약간명, 그리고 작곡·성악·기악·경음악 등 4개 분과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951년 3월부터 1953년 9월까지 월북한 조선음악가동맹 출신 100여명과 통합하여 ‘조선음악동맹’으로 조직을 개편하였다. 위원장 리면상, 부위원장 김순남, 서기장 리범준, 상무위원 리면상·김원균·김순남·김칠성·리건우·강장일·리경팔·최룡린·안기옥·박동실·김기덕·안기영·리범준 등과 작곡·고전음악·연주·평론 등 네 개 분과위원회 및 각 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1953년 9월부터 1955년 8월까지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산하 3개 동맹이 전문적 창작단체로 각각 독립하여 조선작곡가동맹이 나왔다. 위원장 리면상, 부위원장 리건우, 서기장 리천백, 위원 안기옥·김칠성·김옥성·박한규 등과 작곡·아동음악·고전음악·평론 등 네 개 분과위원회로 구성 활동하였다. 1961년 3월 ‘혁명적 음악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산하의 조선음악가동맹으로 개칭 개편한 이래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90년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은 김원균이었으며, 이후 성동춘-리학범-송석환으로 바뀌었다.
조선음악가동맹은 여덟 가지의 목적사업을 진행한다. 1)음악예술의 혁명전통과 김일성-김정일의 주체적인 음악예술을 계승시킨다. 2)민족음악의 유산을 비판적으로 이어받는다. 3)음악창작사업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워 제국주의의 사상문화적 침투와 반동적 문예조류 침습을 반대한다. 4) 음악가들의 정치적 식견과 창작예술적 기량을 높이고 사상예술성이 높은 작품들을 창작형상하도록 교양한다. 5)음악가동맹은 음악창작을 군중적으로 전개하는 사업도 조직 진행한다. 6)음악가동맹은 조국통일을 위하여 남한과 해외동포들을 적극 지지 성원한다. 7)주체음악예술의 성과들을 대외에 널리 선전하고 여러나라의 진보적인 음악단체들과 친선교류를 강화한다. 8)음악가동맹은 음악가들을 교양하기 위한 교양자료들을 발간한다. 문예총(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 작가·예술인들에 대한 사상예술적 교양사업에 주력하고 내각 문화성이 창작분야에 대한 행정적인 조직사업과 지도사업을 책임지고 있다면, 당 선전선동부는 이 모든 사업을 정치적·정책적으로 총괄 지도하는 입장에 있다고 하겠다. 이를 북한은 문예사업에서의 ‘3위1체의 지도체계’라고 부르고 있다.
조선음악가동맹은 1990년 10월 분단 45년 만에 남북음악인이 처음으로 모여 평양에서 ‘범민족통일음악회’와 서울에서 ‘90서울전통음악회’를 교류사업으로 주도하였다. 범민족통일음악회는 준비위원회 위원장 윤이상과 함께 조선음악가동맹이 북측준비위원회(위원장 김원균, 부위원장 성동춘)를 맡아 조직 진행하였다. 또한, 평양에서 분단 45년 만의 첫 학술토론회로 ‘민족음악과 조국통일 토론회’(북측위원장 성동춘, 남측위원장 노동은)가 개최되었다.
동의어
음악가동맹
,
범민족통일음악회
관련연구(남)
노동은, 『노동은의 두 번째 음악상자』, 파주: 한국학술정보, 2001.
관련자료(북)
리히림 외, 『해방후 조선음악』, 평양: 조선작곡가동맹중앙위원회, 1956.
리히림·리차윤·김득청 외, 『해방후 조선음악』, 평양: 문예출판사,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