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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음악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매체 > 월간 > 음악
9분류 매체
집필자 천현식
시기1955년∼1967년
제작자 조선작곡가동맹 중앙위원회,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정의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발행된 음악분야 전문잡지이다.
정의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발행된 음악분야 전문잡지이다.
내용
1955년부터 1967년까지 조선작곡가동맹 중앙위원회와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로 발행된 음악분야 전문잡지이다.
1955년부터 1956년까지는 조선작곡가동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로, 1년에 4번 발행되는 계간지의 형태였다. 발행처는 조선작곡가동맹이었다. 이런 형태로 1956년 4호(루계 8호)까지 발행되고 1957년부터는 월간지로 발행되었다. 마찬가지로 조선작곡가동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였으나 발행처는 조선음악사로 바뀌었다. 1958년 3호(루계 15호)부터는 발행처가 조선음악출판사로 바뀌어 1961년 9호(루계 57호)까지 발행된다. 1957년 1호(루계 1호)부터 1959년 2호(루계 26호)까지는 편집위원이 확인된다. 편집주필은 리히림이었으며 편집위원은 김옥성, 강효순, 김길학, 리조영, 리정언, 문종상, 박한규, 신도선, 안기옥이었다. 그리고 1961년 1호(루계 49호)부터는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로 발행되었다. 또한 1961년 10호(루계 58호)부터는 발행처가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로 바뀐다. 이는 1953년부터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 해체되고 개별 음악부문 단체로 축소되어 활동하던 조선작곡가동맹이 1961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 다시 결성되면서 조선음악가동맹으로 확대 개편된 데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조선음악가동맹 기관지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에서 발행된 것은 󰡔조선음악󰡕이 마지막으로 확인되는 1967년 11호(루계 118호)까지 이어진다. 이후 발행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기존에 조선연극인동맹중앙위원회·조선무용가동맹중앙위원회 기관지였던 『조선예술』이 1968년 4호(루계 141호)부터 종합예술잡지로 바뀌면서 문학예술 각 분야가 통합되고 음악부문의 󰡔조선음악󰡕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것을 보면 1968년 3호까지 󰡔조선음악󰡕이 발행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어쨌든 1968년 4호부터 󰡔조선음악󰡕이 발행되지 않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조선음악』은 1950∼1960년대 북한 유일의 월간 음악전문잡지로서 모든 음악이론과 실제가 망라되어 있다. 월간 잡지로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충실한 1차 사료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67년 유일지배체제 확립 이전, 그러니까 1967년 4호(루계 111호)까지의 자료에서는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개인 음악가의 글들이 함께 실려서 북한 음악계의 중요한 논쟁들도 살필 수 있다. 이렇게 합의되거나 통일되지 않은 개인 의견과 집단의 의견들이 서로의 주장을 펼치는 모습은 이후의 공식 간행물에서는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합의된 이후에만 드러나는 음악적 사실들이 아닌, 살아 있는 논쟁과 토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데에 아주 큰 의의가 있는 자료이다. 그리고 이것이 공식적 체계화 이전의 논쟁이라는 점에서 현재 북한음악의 뿌리를 살펴볼 수 있다는 의의도 가지고 있다.
내용
1955년부터 1967년까지 조선작곡가동맹 중앙위원회와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로 발행된 음악분야 전문잡지이다.
1955년부터 1956년까지는 조선작곡가동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로, 1년에 4번 발행되는 계간지의 형태였다. 발행처는 조선작곡가동맹이었다. 이런 형태로 1956년 4호(루계 8호)까지 발행되고 1957년부터 월간지로 바꾸면서 마찬가지로 조선작곡가동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였으나 발행처는 조선음악사로 바뀌었다. 1958년 3호(루계 15호)부터는 발행처가 조선음악출판사로 바뀌어 1961년 9호(루계 57호)까지 발행된다. 1957년 1호(루계 1호)부터 1959년 2호(루계 26호)까지는 편집위원이 확인된다. 편집주필은 리히림이었으며 편집위원은 김옥성, 강효순, 김길학, 리조영, 리정언, 문종상, 박한규, 신도선, 안기옥이었다. 그리고 1961년 1호(루계 49호)부터는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기관지로 발행되었다. 또한 1961년 10호(루계 58호)부터는 발행처가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로 바뀐다. 이는 1953년부터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 해체되고 개별 음악부문 단체로 축소되어 활동하던 조선작곡가동맹이 1961년 조선문학예술총동맹(문예총)이 다시 결성되면서 조선음악가동맹으로 확대 개편된 데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조선음악가동맹 기관지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에서 발행된 것은 『조선음악』이 마지막으로 확인되는 1967년 11호(루계 118호)까지 이어진다. 이후 발행여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런데 기존에 조선연극인동맹중앙위원회·조선무용가동맹중앙위원회 기관지였던 『조선예술』이 1968년 4호(루계 141호)부터 종합예술잡지로 바뀌면서 문학예술 각 분야가 통합되고 음악부문의 『조선음악』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것을 보면 1968년 3호까지 『조선음악』이 발행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어쨌든 『조선예술』이 음악분야까지 다루기 시작한 1968년 4호부터 『조선음악』이 발행되지 않은 것은 확실해 보인다.
『조선음악』은 1950∼1960년대 북한 유일의 월간 음악전문잡지로서 모든 음악이론과 실제가 망라되어 있다. 월간 잡지로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충실한 1차 사료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67년 유일지배체제 확립 이전인 1967년 4호(루계 111호)까지의 자료에서는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개인 음악가의 글들이 함께 실려서 북한 음악계의 중요한 논쟁들도 살필 수 있다. 이렇게 합의되거나 통일되지 않은 개인 의견과 집단의 의견들이 서로의 주장을 펼치는 모습은 이후의 공식 간행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합의된 이후에만 드러나는 음악적 사실들이 아닌, 살아 있는 논쟁과 토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데에 매우 큰 의의가 있는 자료이다. 그리고 이것이 공식적 체계화 이전의 논쟁이라는 점에서 현재 북한음악의 뿌리를 살펴볼 수 있다는 의의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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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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