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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Kim Yongchun]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미술 > 이론가
9분류 인물
집필자 박계리
출생일1904년 2월 3일
사망일1967년 11월 3일
출생지경상북도 대구시 선산리
정의
김용준은 1950년대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조선화를 창작해내기 위한 논쟁을 주도한 화가 겸 이론가이다.
용례/관용구
조선화 <춤>은 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금메달을 맏았으며 민족회화의 우월성을 내외에 널리 시위하였다. 『문학예술대사전(DVD)』 , 2006.
내용
근원, 선부, 검려, 우산, 노시산방주인 등 김용준의 여러 호 중에서 근원이 대표적이다. 김용준은 1918년 경성부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이종우에게 미술을 배워 중학교 때 이미 <동십자각(‘건설이냐 파괴냐?’)>(1924)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입선한 경력이 있다. 1921년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 1931년 졸업 후 귀국하여 모교인 서울 중앙중학교와 보성중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1934년 길진섭과 목일회를 조직하여 ‘목일회전람회’를 주최했다. 1938년 이후 수묵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작품 활동과 함께 평론 등의 집필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1946년 서울미술대학의 동양화과 교수를 역임, 1948년 동국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였을 때 서울예술대학의 임시교장을 지냈고 이후 월북하여 평양미술대학 교수가 되었다. 이후 조선미술가동맹, 조선건축가동맹에 참여했다. 1955년까지 과학원 고고학연구소에서 미술사를 연구하며 작품을 그렸다. 1956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평양미술대학 조선화 강좌장으로서 미술 교육을 했다.
1935년 서화협회 회원전에 작품을 출품하며 동양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 후반기 작품 가운데 대표작은 ‘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춤>(1957), <묘향산>(1957), ‘공화국창건 10주년 경축 국가미술전람회’ 2등 수상작 <강냉이>(1958) 등이다. 미술사가로서 김용준은 북한 화단의 전통 계승에 대한 논쟁에서 문인·수묵화에 대한 우월성과 계승의 당위성을 주장하여 조선화 성립 과정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문인화의 사의적(寫意的, 사물의 형태보다 내용이나 정신에 치중하여 그리는) 표현을 사실 묘사의 높은 단계로 제시하여 사물의 진실성을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김용준의 수묵화론은 조선화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는 1960년대 초까지 화단의 주류적 입장에 위치하였으나, 이후 이어지는 전통에 대한 논쟁에서 김용준의 견해는 복고주의로 비판받게 된다. 김용준은 평양미술대학 교수로서 북한 화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조선미술사』, 『조선화기법』(1959), 『조선화채색법』(1962), 『단원 김홍도』를 집필하였다.
미술교육사업의 성과를 인정받아 1962년 예술학 부교수 학직을 수여받았다. 이외 여러 직책을 맡았으며 미술작품창작과 교수교양사업의 공로로 표창장을 수여받았다.
관련어 평양미술대학, 조선화, 국가미술전람회
동의어 근원, 선부, 검려, 우산, 노시산방주인
관련연구(남) 박계리, 「김일성주의 미술론 연구: ‘조선화’ 성립 과정을 중심으로」, 『통일문제연구』, 제15집 1호, 2003.
관련자료(북)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백과사전출판사 편, 『광명백과사전 6 : 문학예술』,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2008.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원, 2006.
참고자료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백과사전출판사 편, 『광명백과사전 6 : 문학예술』,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2008.
박계리, 「김일성주의 미술론 연구: ‘조선화’ 성립 과정을 중심으로」, 『통일문제연구』, 제15집 1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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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이미지명 : 김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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