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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익 [Pak Yongik]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미술 > 작가 > 회화 > 유화
9분류
인물
집필자
박계리
출생일
1915년 2월 1일
사망일
사망일 미상
출생지
함경남도 함흥부 동평리 (현 함흥시 성천구역 동문동)
정의
박영익은 노동 현장을 체험하고 작품을 그렸던 유화가로, 풍경화에 특기가 있었다.
용례/관용구
1949년 3월부터 북조선미술가동맹 현역미술가로 함흥에서 병치료를 하면서 목판화 《육박전》(1950)을 창작하였다. 『문학예술대사전(DVD)』, 2006.
내용
1928년 함흥 제1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함흥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33년 5월 함흥양화동인회에 가입하였다. 함흥부청 토목과에서 1년을 일한 뒤 사직하고, 1937년 가와바타미술학교와 일본대학 미술과에서 수업을 받았다. 1943년 귀국하여 함흥관립사범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쳤다. 8.15 해방 이후 10월 함흥의 문화건설협의회의 준비위원, 함흥미술가동맹의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47년 7월부터 1948년 1월까지 북조선미술가동맹 함경남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48년 함흥미술연구소 소장, 1949년 3월부터 북조선미술가동맹 서기장으로 활동했다. 1947년 북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 상무위원을 지냈고, 1951년에 다시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이외에 평론분과 위원, 유화분과위원으로 활동했다.
해방 후에 그린 풍경화 중 <대동문>, <계곡>이 대표적이다. 6.25 전쟁 시기부터 조선미술가동맹의 활동으로 함경남도에서 작품을 그렸고, 이후의 활동은 평양과 함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박영익은 본궁화학공장, 흥남비료공장, 검덕광산, 성진제강소를 다녀와 그린 작품으로 북한 미술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노동 현장의 체험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대표작들은 1948년 전국문학예술축전 미술전람회 2등 수상작인 유화 <카바이드는 쏟아진다>, 그리고 <쇠물온도측정을 배우는 강철전사들>(1955), <용해공들>(1958) 등이 있다.
관련자료(북)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원, 2006.
참고자료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이미지
박영익
이미지명 : 박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