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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Kim Chongsu]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미술 > 작가 > 조소
9분류 인물
집필자 박계리
출생일1917년 12월 5일
사망일1997년 1월 23일
출생지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 근곡리
정의
김정수는 월북한 조소각가로, 평양미술대학에 재직하였던 교육자이자 기념비미술 사업에 참여했던 미술가이다.
내용
1926년부터 6년제 보통학교에 다녔다. 외삼촌인 무대미술가 강호의 영향으로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1933년 서울에서 야간중학교를 다니며 고학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강호가 운영하고 있던 부산의 간판점 백조도안사를 거쳐, 이후 서울의 경성도안사 조수로 취직하였다. 1938년 일본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하였다. 1938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조군의 목>으로 입선하였다. 1943년 귀국하여 한상근의 요업연구소에 취직하였고 이후 조소각가 윤효중의 대화숙미술제작소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1944년 조선미술전람회에 <물 긷는 아가씨>로 입선하였다. 해방 후 조선프롤레타리아미술동맹, 조형예술동맹에 가입하였다. 1946년 조규봉, 리쾌대, 리석호와 함께 월북하였다. 1947년 9월 문학수, 황헌영, 김석룡과 함께 평양미술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이후 사망할 때까지 50년 동안 교육에 힘썼다.
1947년 조선미술가동맹의 해방탑 사업으로 <돌격>을 제작하였다. 그의 대표작은 ‘제1차 국가미술전람회’ 3등 수상작인 <광부>(1947), <조국보위초소에서>(1949), <첫눈>(1959) 등이다. 이 중 <광부>는 해방 후 북한의 정책을 반영한 첫 조각 작품이라는 의의가 있다. 김정수의 조각은 기교적이지 않고 소박한 맛이 있다고 북한 미술계에서 평가받는다. 그는 1년 동안 여러 나라를 방문하고 평양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는데, 이 시기 작품들에서 조형미를 살리기 위한 대담한 구성의 시도와 대상의 심리에 따른 성격을 표현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60년대 <천리마동상>(1961),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1967), <만수대대기념비>(1972) 등의 북한 기념비미술 창작사업에 참여하였다. 김정수는 교육자로서 『조각기초』(1986), 『조선조각사』(고대중세편, 1990) 등을 집필하였다.
1961년 교수교양사업의 공로로 부교수 학직을 수여받았다.
관련어 평양미술대학, 기념비미술, 기념비조각, 국가미술전람회
관련연구(남) 박계리, 「박계리의 스케치北 (11), 보천보전투 승리기념탑」, 『통일한국』, 347호, 2012.
관련자료(북)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참고자료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