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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준 [Hwang Yongchun]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미술 > 작가 > 회화 > 조선화
9분류 인물
집필자 박계리
출생일1919년 5월 20일
사망일2002년 3월 5일
출생지충청남도 룡산군 계룡산
정의
황영준은 주체적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개성적인 화풍을 실현한 월북 조선화가로, 선묘만으로 형태를 완성하는 풍경화가 특징이다.
내용
옥천군 보통학교를 다녔다. 연 1회 개최되던 학생미술전람회에서 매해 입선하였다. 화가 리삼봉이 황영준을 김은호에게 소개시켜주었다. 1931년 서울의 김은호 화숙, 후속회 조선미술원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리석호, 김기창, 장우성과 함께 공부하였다. 6.25 전쟁 때 월북하여 조선미술가동맹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전후 1960년까지 평양미술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1966년부터 평안남도, 남포시에서 미술가동맹 위원장을 맡았다.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 사이 백두산의 전적지를 답사하였다. 1966년 이후 1985년까지 조선미술가동맹의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원로미술가들로 구성된 송화미술원의 명예고문을 지냈다.
해방 후 서울에서 11947년, 1948년, 1950년 3차례의 2인전을 개최하였다. 평양미술대학에서 미술을 가르치던 때의 작품 중 <평로는 복구된다>(1955), <벌목공>(1959), <류벌공>(1959) 등은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66년 평안남도에서 미술가동맹 활동을 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1988년 홍성철과 2인전을 개최하며 전시한 <소백산>, <북포태>, <삼지연늪가에서> 등이 우수작으로 꼽힌다. 황영준은 전적지 화가라고 불릴 만큼 전적지 답사를 통해 많은 풍경화를 그렸다. 백두산에 다녀온 뒤의 습작은 1000여 점에 이르고 이후 개인전에 전시한 작품은 100여 점에 달하였다. 1999년 80세 생일에 김정일로부터 생일상을 받았다.
1988년 창작의 공로를 인정받아 공훈예술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주제의 형태를 선묘로 표현하고 짧은 선과 점으로 끝맺는 것은 황영준만의 독특한 개성이다.
관련어 평양미술대학, 송화미술원, 공훈예술가
관련자료(북)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참고자료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