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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란 [O Miran]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 영화배우
9분류
인물
집필자
전영선
출생일
1954년 08월 28일
사망일
2006년 06월 26일
출생지
평양시 중구역 오탄동
정의
30대에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조선인민군4.25예술영화촬영소 소속 영화배우이다.
내용
오미란은 30대에 인민배우에 오른 최고 배우이다. 평양 련광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국립연극단 배우양성소를 거쳐 1972년부터 평양예술단의 배우를 거쳐 1972년 조선2.8예술영화촬영소(현 조선인민군4.25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였다. 1978년 <축포가 오른다>에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면서 배우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도라지꽃>(1987), <생의 흔적>(1989), <종군기자의 수기>(1982), <그들의 모습에서>(1985), <새 정권의 탄생>(1986), <곡절많은 운명>(1989~1995), <민족과 운명>에서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아 30대의 젊은 나이에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으며 국기훈장 1급을 비롯하여 많은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인민배우 오미란은 북한주민들에게 ‘단아하고 매력적인 여성’의 전형으로 남아 있다. 그녀가 출연한 <도라지 꽃>(1987)은 평양에서 열린 ‘제1차 쁠럭불가담(비동맹)영화제’(1987, 현 ‘평양국제영화축전’)에서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시나리오상을 받았고, 오미란은 금상을 수상했다. 영화 속 오미란은 도시가 좋다며 농촌을 떠나는 애인과 이별하면서까지 고향을 꾸려 가는 한 농촌 여성의 삶을 잘 구현했다. 짐 싸 들고 떠나는 애인에게 “남의 집에서 흰쌀밥에 고깃국을 얻어먹느니, 제 손으로 가꾼 강냉이밥으로 보람을 느끼고 싶다”고 말하는 대목은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였다. 오미란은 소박한 여성뿐 아니라 <민족과 운명>(6~10부)의 홍영자 편에 출연하면서 악녀 역도 훌륭히 소화해 낸 유능한 배우였다. 오미란의 유해는 사망한지 1년 6개월 후인 2007년 12월 애국렬사릉으로 이장되었다.
관련어
조선인민군4.25예술영화촬영소
,
인민배우
,
국기훈장
,
배우양성소
,
평양예술단
관련연구(남)
전영선,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예술인들』, 서울: 역락, 2004.
이미지
오미란
오미란2
오미란3
이미지명 : 오미란
이미지명 : 오미란2
이미지명 : 오미란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