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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Mt. Paektu]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문학 > 시 > 서사시
9분류 작품
집필자 김낙현
시기1947년 2월
제작자조기천
정의
조기천의 대표작이자 북한 최초의 서사시인 <백두산>은 항일혁명문학의 전범을 보여준 작품으로서 오늘날까지도 북한문학에서 변함없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용례/관용구
사건발전의 선명성과 째인 구성, 시인의 랑만적 열정과 구상의 웅대성, 표현적이며 격동적인 언어형상은 서사시의 예술적 특성으로 된다. 『문학예술사전 중』, 1991.
내용
『백두산』은 머리시, 본시, 맺음시(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시는 7장 46절로 나뉘어져 있다. 서사시적 요소인 인물, 배경, 사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백두산>의 구성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머리시: 이 작품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제1장: 일반적인 서사구조에서처럼 배경과 등장인물 및 사건의 실마리가 제시된다. 백두산 홍산골에서 일제의 토벌대와 빨치산은 전투를 벌인다. 전투에서 승리한 ‘김대장’은 정치원 ‘철호’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고 철호를 조선에 떠나보냄으로써 새로운 사건 전개를 암시한다. 제2장: 철호는 백두산 화전 마을인 솔개골에서 살고 있는 ‘꽃분’과 만난다. 꽃분은 비밀리에 파견된 철호를 통해 지도를 받으면서 의식화된다. 제3장: 꽃분과 그녀의 아버지인 김윤칠에 얽힌 사연이 소개된다. 김윤칠은 일제에 의해 아내가 죽자 백두산 솔개골에서 화전농으로 살아가고 있다. 꽃분은 철호와 함께 비밀 선포문(삐라)을 등사하던 중 일본 순사가 찾아오자 위기상황에서 대담한 기지를 발휘해 철호를 구한다. 이로써 철호와 꽃분의 동지적 연대감은 깊어간다. 제4장: 제4장은 김대장의 인간됨을 잘 드러내고 있는 장이다. ‘소 도살 사건’이 삽입됨으로써 김대장의 따뜻한 인간미가 두드러지게 표현되었으며 김대장은 빨치산과 인민의 연대를 강조한다. 제5장: 10일만에 동남(조선)으로 떠난 빨치산들은 일본 수비대의 추격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철호의 연락원인 소년 영남이는 전사한다. 철호는 꽃분이와 두 번째 상봉을 하게 되며 H시로 떠난다. 제6장: 사건의 절정을 이루는 장으로서 김대장이 이끄는 빨치산 부대는 압록강을 건너 H시를 습격한다. 전투에서 승리한 빨치산들은 민중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면서 해방 전의 그날을 기약하면서 떠난다. 제7장: 결말에 해당하는 장이다. 임무를 완수한 빨치산이 압록강을 건너 진지로 돌아오는 도중 추격해온 일본 토벌대와 전투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철호와 석준은 장렬하게 전사한다. 맺음시: 시인은 백두산과의 대화를 통해 새 나라 건설을 역설하면서 주제의식을 강조한다.
이상과 같은 서사 구조를 지닌 <백두산>은 현재와 과거의 반복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시는 현재이고 본시는 과거, 맺음시는 현재의 구조를 띠고 있다.
<백두산>창작의 배경에는 김일성을 대중의 영웅으로 부각시켜 북한의 지도자로 구축하려는 당시 소련 당국의 정치적 의도가 내재하였다.
<백두산>이 첫 출판된 시점에 대해서는 북한문학에서조차 1948년으로 기술하고 있어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백두산>이 처음으로 출판된 것은 1947년 4월 30일 북한 『로동신문사』에서 발행한 것이다. 이는 초간본이며 시집 형태로 출판되었던 것이다. 이후 같은 해 11월 중국 용정에서 초간본을 번인한 시집 <백두산>이 출판되었고 1949년에 두 번째로 번인되어 출판되었다. 이후 시집으로 1959년(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86년(문예출판사), 1987년(그림책, 문예출판사), 1989년(남한, 실천문학사), 1995년(문학예술종합출판사), 2004년(문학예술출판사)에 출판되었다. 선집이나 다른 작품집에 소개된 것들은 1952년(『조기천선집 상』, 조선문화전선사)과 1953년 (1952년 『조기천선집 상』의 번인본, 연변교육출판사), 1955년(『조기천선집』,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81년(『조선문학사작품집』, 일본에서 한글로 간행, 학우서방), 1983년(『조선문학작품선집』(24) 사범대학용, 교육도서출판사)에 출판된 것들이 있다. 그리고 번역본으로 국외에서 출판된 것들은 적이(適夷)가 중국어로 번역한 시집(1953, 작가출판사)과 허남기가 일본어로 번역한 시집(れんが 書房新社, 1987) 등이 있다.
이상과 같이 총 16차례에 걸쳐 출판된 <백두산>을 텍스트의 판본에 따라 구별하면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류: 1947년부터 1959년까지 간행된 판본은 의미상의 차이가 거의 없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1947년판은 일부 시어가 한자로 표기되었고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그 이후에 간행된 판본은 가독성(可讀性)을 위해 한글로 표기되었고 띄어쓰기가 제대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둘째 부류: 1983년, 1986년, 1987년, 남한에서 간행된 1989년판은 모두 의미상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하나의 판본으로 묶을 수 있다. 이들 판본은 첫째 부류에 비해서 해석상 중요한 많은 부분을 삭제하거나 수정하여 주의를 요한다.
셋째 부류: 1995년과 2004년판 역시 의미상 동일하다는 점에서 같은 판본으로 볼 수 있다. 이 부류의 판본은 첫째 부류의 내용을 일부 복원하고 수정하였다.
주목할 사실은 세 개의 부류로 처리할 수 있는 <백두산>은 해석상 중요한 부분이 삭제되고 수정되어 큰 차이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특히 첫째와 둘째부류의 판본은 차이점이 매우 크다. 1947년부터 1959년까지 단독시집이나 『조기천 선집』 등에 실려 꾸준히 소개되었던 장편서사시<백두산>은 1959년 이후 한 번도 출판되지 않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 다시 간행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 판본은 특히 개작이 심해 이전의 판본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개작이 두드러진 이유는 북한 내의 정치적 상황과 북한의 대외관계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북한 내의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백두산>이 개작된 원인은 1956년에 있었던 8월 종파사건과 이의 연장선에서 도출된 주체사상의 영향이다. 북한이 조선해방과 국가건설의 주역을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으로 확정한 이상 <백두산> 원시에서 나타난 소련의 역할과 영향은 필연적으로 삭제되어 개작될 수밖에 없었다. <백두산>은 1960~1970년대에 유일하게 북한에서 한 번도 간행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백두산>에 담겨 있던 막중한 소련의 역할과 영향을 떨쳐버리고 1967년에 제기된 주체사상에 입각하여 항일혁명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북한 정권의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김일성의 항일혁명투쟁을 구현한<백두산>이 갖는 파급효과를 경시하지 못한 북한은 1980년대에 들어와 다시 <백두산>을 개작하여 간행했던 것이다. 1990년대 텍스트에서는 원시의 내용이 일부 복원되어 소련과의 유대를 강조하는 기류를 보였다. 이와 같은 결과는 1990년대 세계적으로 사회주의체제가 붕괴된 후 북한이 고립된 상황에서 총체적인 위기를 벗어나고자 소련과의 연대와 유대를 강조했던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텍스트가 원시의 내용을 완전히 복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주체문예이론에 토대를 둔 주체성과 국제주의적 연대 사이에서 갈등했던 북한문학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대외적인 정세상황에 발맞추어 돌파구를 찾으려는 북한문학의 사정을 백두산의 개작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백두산>개작은 조기천 사후에 행해졌다. <백두산>은 북한의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당의 문예정책에 의해서 개작이 되었다. 당에 의해 개작된 <백두산>은 그만큼 북한의 사정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꾸준히 출판되었던 <백두산>은 당시 북한 내의 정치적 상황과 북한의 대외관계에 따라 개작되었으며, 이는 북한문학 지형도의 변화상을 확인할 수 있게 해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체사상을 정권의 핵심으로 내세웠던 북한이 역설적이게도 <백두산>을 전면 출판 금지하지 못하고 소련과 관계된 내용을 개작하면서 지속적으로 <백두산>을 간행했었던 점은, 그만큼 북한문학에서 <백두산>이 지닌 중요한 의의를 반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해방 후 남북한 최초의 장편서사시인 <백두산>은 항일혁명문학의 전범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되며, 현대 서사시의 풍격을 완전히 갖춘 새 시대 서사시 문학의 빛나는 모범으로 평가된다. <백두산>이 지닌 중요한 의의는 1947년 초 있었던 김창만과 안함광의 백두산 논쟁을 계기로 1947년 이후 북한문학에서 창작방법론의 전형이 되었던 고상한 사실주의를 확고하게 자리 잡게 하는 촉진제로 작용한 것이다.
관련어 항일혁명문학, 고상한 사실주의, 조기천
동의어 白頭山
관련연구(남) 김낙현, 「조기천 시 연구」, 박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2010.
김낙현, 「조기천 시의 기반과 세계」, 『어문연구』, 152호, 2011.
고현철, 「조기천 『백두산』 연구의 선결문제」, 『한국문학논총』, 제39집, 2005.
고현철, 「북한 정치사와의 상관성으로 살펴본 조기천의 1955년판 『백두산』」, 『국제어문』, 제35집, 2005.
오성호, 「조기천의 『백두산』과 북한 서사시의 형성」, 『상허학보』, 제11집, 2003.
관련자료(북) 조기천, 『백두산』, 용정: 인민학원인쇄부, 1947.
조기천, 『조기천 선집』, 평양: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5.
조기천, 『백두산』, 평양: 조선작가동맹출판사, 1959.
조기천, 『백두산』, 평양: 문예출판사, 1986.
조기천, 『백두산』,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5.
조기천, 『백두산』, 평양: 문학예술출판사, 2004.
김창만, 「북조선문단의 새로운 수확-조기천작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평함」, 『모든 것은 조국건설에』, 평양:조선로동당출판사, 1947.
리정구, 「시인 조기천의 창작의 특징과 의의」, 『문학예술』, 제5권 제7호, 1952.
리정구, 「시인 조기천의 문학적 활동과 애국주의 사상」, 『문학예술』, 11호, 1952.
리정구, 『시인 조기천론』, 평양: 문예총출판사, 1953.
김조규, 「서사시 백두산과 더불어 길이 전할 이야기」, 『은혜로운 품속에서 5』, 평양, 문예출판사, 1982.
한효, 「조기천의 창작에 있어서의 당성」, 『조선문학』, 7호, 1953.
참고자료 조기천, 『백두산』, 용정: 인민학원인쇄부, 1947.
김낙현, 「조기천 시 연구」, 박사학위논문, 중앙대학교, 2010.
김낙현, 「조기천 시의 기반과 세계」, 『어문연구』, 152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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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효, 「조기천의 창작에 있어서의 당성」, 『조선문학』, 7호,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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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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