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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팔양 [Pak Palyang]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문학 > 시인
9분류
인물
집필자
오태호
출생일
1905년 8월 2일
사망일
1988년 10월 4일
출생지
경기도 수원
정의
박팔양은 주로 전원을 칭송하는 자연시와 사회적 현실에 대한 관심을 노래한 경향시 등을 발표한 시인이다. 구인회에 가담하고 카프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문학적 편력을 전개했다. 작품에는 <저자에 가는 날>, <데모>, <진달래> 외 다수가 있고 시집으로 『여수시초』 등이 있다.
용례/관용구
박팔양은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에 대한 높은 충실성을 지니고 시창작을 진행하였으며 시문학발전에 뚜렷한 자욱을 남기였다. 『문학예술대사전(DVD)』 , 2006.
내용
박팔양은 필명으로 김여수와 여수가 있으며, 서울 재동보통학교를 거쳐 17세 때 배재고보 졸업 후 경성법전에서 수학하며 정지용, 김화산 등과 함께 시 동인지 『요람』의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외일보』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조선중앙일보』 사회부장을 역임했다. 19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신의 주(酒)>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파스큘라에 가까웠던 그는 1925년 서울 청년회의 일원으로 카프(KAPF)에 참여하였다가 2년만에 자진 탈퇴하고, 1934년 박태원, 이상 등과 함께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활약하였다. 필명을 김여수로 쓰면서 『여수시초』(1940)를 간행했다.
그의 시적 정조는 일관된 서정성의 바탕 위에 크게 2가지 경향이 공존한다. 하나는 사회적 현실에 대한 관심을 노래한 경향시이며, 다른 하나는 전원을 예찬하는 자연시들이다. 시적 공간은 대체로 도시 문명이 빚어낸 가난과 폐허의 공간이다. 1930년대 모더니스트들과 마찬가지로 권태, 우울 등 도시문명의 병리적 현상에 주목하고, 그 극복의 공간으로 자연을 택하였다. 그에게 자연은 모든 생명의 시원이자 모성 자체이며 영성을 내재한 절대의 신비였기 때문이다.
1945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하였으며, 1946년 월북하였다. 월북 이후 조선공산당에 입당하고 평안북도 당위원회 기관지 『바른말』 신문사 편집국장을 역임하였으며, 『로동신문』 부주필로 사업하다가 1949년 김일성종합대학 강좌장으로 임명되어 민족간부 양성사업에 정진하였다. 6.25 전쟁 때 종군작가로 참전하였다. 전후에 『조선문학』 편집위원(1953~1956), 이후 작가동맹 중앙위원과 서기장, 부위원장직을 거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도 지냈으며, 평양문학대학의 교수로 강단에 섰다. 1966년 ‘반당종파분자’로 숙청된 후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북한에서는 <진달래>(1930) 등의 해방전 작품과 해방 이후 작품인 서사시 <눈보라 만리>(1961)와 서정서사시 <황해의 노래>(1957)를 주목한다. 북한은 이 작품들이 김일성의 영도를 받는 인민의 참다운 영웅주의에 대한 찬가임과 동시에 작가의 성장을 보여주는 의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관련어
조선문학가동맹
동의어
朴八陽
,
김려수
,
金麗水
,
김여수
,
여수
,
麗水
관련연구(남)
이명재 편, 『북한문학사전』, 서울: 국학자료원, 1995.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관련자료(북)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원, 2006.
백과사전출판사 편, 『광명백과사전 6: 문학예술』,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2008.
이미지
박팔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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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명 : 박팔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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