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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년의 서울 [Seoul in 1882]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문학 > 소설 > 장편소설
9분류 작품
집필자 임옥규
시기1961년
제작자최명익
정의
<임오년의 서울>은 임오군란을 소재로 하여 군대와 민중의 반침략, 반봉건 투쟁을 형상화한 최명익의 중편 역사소설이다.
용례/관용구
중편 력사소설 《임오년의 서울》에 대한 소설 창작준비를 진행하던 때였다. 《임오군인폭동》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군대와 인민들의 일제에 대한 반침략, 반봉건적인 대중투쟁이였다는 력사적 성격을 바로 잡고야 소설창작을 하였다. 『조선문학』, 7호, 2003.
내용
<임오년의 서울>은 중편 역사소설로 19세기 말에 발생한 일들이 중심이 된다. 이 소설은 명성황후 친족 민씨 집권기에서부터 임오군란으로 명성황후가 도망가고 민중이 승리하는 시기까지만 다루고 있다. 1873년 최익현의 탄핵으로 대원군이 물러나자 민씨 일가가 통치권을 장악하고 왕비의 척족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후 임오군란을 맞게 되는 과정을 서사의 얼개로 삼고 있다. 이야기는 소제목 없이 ×표시로 구분된다. 편의상 장으로 나눈다면, 1장에서 5장까지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에피소드와 인물들의 성격이 드러나고 6장부터는 앞으로 전개될 임오군란의 전후 상황이 나타난다. 2장의 군중 역락의 묘사와 3장의 군정 내부 묘사는 작가의 고증에 의한 것이다.
당시 조선은 1875년 강화도에서 일본 군함 운양호 포격사건으로 말미암아 이듬해인 1876년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조약인 ‘조일수호조규(강화도 조약)’를 체결한다. 이를 계기로 대원군의 쇄국정책은 점차 붕괴되고 대신 국내 정세는 개국·개화로 향하게 되었다. 정권은 대원군을 중심으로 하는 수구파와 국왕과 명성황후 측의 척족을 중심으로 하는 개화파로 양분, 대립하게 되었으며 외교노선은 민씨 정권이 추진한 문호개방정책에 따라 일본을 비롯한 구미제국과의 통상관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1880년에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을 설치하여 대외 개방정책을 취하여 제국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는 한편, 안으로는 개화정책을 실시한다. 이에 따라 개화파와 수구파의 반목은 더욱 심해졌으며 보수적인 입장에 있는 백성들을 도외시함으로써 사회적 혼란과 불안은 거듭되었다.
소설에서는 개방정책과 개화정책에 따른 불합리에 대한 민중의 울분이 6장에서의 청계천 거리 묘사와 함께 나온다. 이 장에서는 불평등 조약에 따른 서양 상품 범람과 일본과 미국의 침략적 속성에 대해 비판한다. 소설에서는 류춘만, 김장손, 강명준, 정의길, 김춘영 등 역사적 인물들이 겪는 백낙관의 원정과 투옥에 대한 의분과 정의길의 누이인 궁녀였던 빙아를 통해 알게 된 조정의 무기 사들이기에 대한 격분이 그려진다. 7장에서는 폭도와 난민 습격에 대비하는 남산에서의 별기군 훈련의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청계천에서 군인인 김춘영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오해한 젊은이와의 소란이 나온다. 결국 둘은 오해를 풀고 1877년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을 되짚어 보면서 지배계층의 부패상을 비판한다. 8장에서는 성 밖에 모인 군정들인 류춘만, 류복만, 홍천석, 리영식 등이 옥에 갇혀 있던 김춘영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은 한양성 안에 있는 벼슬아치들의 집안을 지키는 사랑방의 떨거지와 같은 존재라는 사실에 공감한다. 이들은 조정의 행태에 별기군과 별도로 자신들의 구식군대가 난군이 될 처지를 비관하면서 민중을 기만하는 정권에 대해 분노한다. 당시 조선에서는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을 일본에 파견하는 한편, 신식군대 별기군(別技軍)을 창설했다. 개화정책에 따른 제도의 개혁으로 정부기구에는 개화파 관료가 대거 기용되었으며 1881년 일본의 후원으로 신식군대 별기군을 창설하고 이듬해에는 종래의 훈련도감·용호·금위·어영·총융의 5영을 무위영·장어영의 2영으로 개편하자 여기에 소속하게 된 구영문의 군병들은 자기들보다 월등히 좋은 대우를 받는 신설 별기군을 왜별기라 하여 증오하게 된다.
9장과 10장에서는 김춘영의 집에서 외자상투, 씨둥이, 강명준, 장태진 등이 앞의 일을 의논한다. 또한 선해청의 미고에서 모래 섞인 쌀을 구식군대에게 지급되하가 이를 목격한 군인이 봉기하게 되는 사연이 전개된다. 김춘영, 류복만, 리영식이 민겸호의 청지기를 잡아 조정의 매국 행위와 인천에 있는 일본영사관의 존재를 알게 된다. 11장은 이 소설의 결말 부분으로 임오군란이라는 무장봉기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 소설은 구식 군인과 백성들이 매국노 일당들을 살해와 방화의 방법으로 보복하고 심판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작품은 다양한 생활 화폭과 여러 세부 묘사와 대사 등으로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고 정치, 경제, 문화 각 방면에서 일본 세력이 조선에 들어오는 과정을 폭넓게 펼쳐보였으며 실재 역사자료에 의거하여 명성황후와 그 척족들의 몰락과정을 잘 보여주었다고 평가받는다.
관련어 역사소설, 최명익
관련연구(남) 김은정, 「‘천리마 기수’ 형상론과 최명익의 「임오년의 서울」」, 『세계문학비교연구』, 33권, 2010.
김해연, 『최명익 소설의 문학사적 연구』, 박사학위논문, 경남대학교, 1999.
임옥규, 「최명익 역사소설과 북한의 국가 건설 구상」, 『북한연구학회보』, 12권 2호, 2008 .
관련자료(북) 윤광혁, 「최명익의 생애와 창작을 더듬어」, 『조선문학』, 7호, 2003.
최명익. 「《임오년의 서울》을 쓸 때」『문학신문』, 1962년 7월 24일.
최명익, 「임오년의 서울」1, 『조선문학』, 4호, 1961.
최명익, 「임오년의 서울」2, 『조선문학』, 5호, 1961.
최명익, 「임오년의 서울」3, 『조선문학』, 6호, 1961.
최명익, 「임오년의 서울」1, 『조선문학』, 7호, 1961 .
최명익, 『임오년의 서울』, 평양: 조선문화예술총동맹출판사, 1963.
참고자료 사회과학출판사 편, 『문학대사전 4』,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