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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식 [Chong Yongsik]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미술 > 작가 > 무대미술
9분류 인물
집필자 홍지석
출생일1919년 11월 30일
사망일1987년 5월 12일
출생지평안북도 용천군 운흥리
정의
평안북도 용천 태생의 무대미술가로,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 <밀림아 이야기하라> 등의 무대미술을 담당했다.
내용

정영식은 1919년 평북 용천 태생으로 해방 전에는 가족과 함께 중국에서 살았다. 1933년 중국 무순보통학교를 졸업했고 1936년 이후에는 심양에서 1939년부터는 북경에서 도안가, 제작가로 상업미술 분야에서 활동했다. 1946년 귀국하여 서울 남일공영사에서 도안가로 활동하다 1950년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의용군에 입대하여 북으로 갔다. 1954년 제대한 후에 함경남도 도립예술극장 무대미술가, 국립예술극장 무대미술가로 활동하면서 가극 <견우직녀>(1957), 번역가극 <예브게니 오네긴>(1959), 음악무용극 <밝은 태양아래>(1962, 박용달과 합작), 음악무용서사시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1960, 1965, 합작)의 무대미술을 담당했다.
1960년대 말부터는 혁명가극 창작에 가담하여 가극 <꽃파는 처녀>(서장과 꽃분이 집 장면), <밀림아 이야기하라>, <금강산의 노래> 무대미술 창작에 관여했다. 그 밖에 음악무용서사시극 <영광의 노래>, <행복의 노래> 무대미술을 제작하기도 했다. 무대미술 창조에 대한 기여로 1962년 강진, 박용달, 서옥린 등과 더불어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북한 평론가 리재현은 특히 정영식이 제작한 <꽃파는 처녀> 서장의 무대미술을 높이 평가하는데, 그에 따르면 “무대장치의 류동과 환등자막의 흐름으로 한 장면에서도 무대적 변화를 다양하게 조성하여 신비한 세계를 펼쳐놓은 서장의 무대미술은 단순히 환경과 정황을 제시하던 조건부적이며 약속적인 무대미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형의 흐름식 립체무대미술이 낳은 고귀한 결실”이다.
정영식은 강호, 강진, 박용달, 서옥린 등과 더불어 체제 초기 북한 무대미술의 형성에 주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리재현은 특히 해방 전 도안가, 무대제작가로 활동한 정영식의 경험이 1950~1960년대 북한 무대미술의 형성에 보탬이 되었다고 평한다.

관련어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
관련자료(북) 정영식, 「무대미술 발전에 이바지하겠다」, 『조선미술』, 제11호, 1962.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증보판)』,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이미지

정영식

이미지명 : 정영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