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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대창작사 [Mansudae Art Studio]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미술
9분류 조직
집필자 안미옥
시기1959년 11월 17일
소재지평양시 평천구역 정평동 안산거리
정의
1959년에 처음으로 중앙미술제작소로 설립되었다가 1970년대 초에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종합적인 미술창작기지인 만수대창작사로 건립되었다.
정의
1959년에 처음으로 중앙미술제작소로 설립되었다가 1970년대 초에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종합적인 미술창작기지인 만수대창작사로 건립되었다.
용례/관용구
만수대창작사는 창립이후 눈부신 창작활동을 벌림으로써 주체미술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문학예술대사전(DVD)』, 2006.
용례/관용구
“만수대창작사는 창립이후 눈부신 창작활동을 벌림으로써 주체미술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문학예술대사전(DVD)』, 2006).
규모
만수대창작사는 부지면적 12만㎡, 연건평 7만 4,000㎡의 40여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가 1,000여 명, 종사자 2,700여 명이 활동하는 만수대창작사는 북한에서 가장 큰 중앙미술창작기관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창작기지이다. 조선화, 유화, 벽화, 출판화, 도자기, 조각, 공예, 금속, 돌, 수예, 보석화, 도안 등 12개의 창작단과 60여 개의 창작실이 있다. 석고상제작단, 동상제작단, 돌공예제작단, 초상휘장제작단, 기념품제작단, 미술기자재제작단 등 8개의 제작단이 미술창작기지를 이루고 있다. 평양에 있는 만수대창작사를 모체로 지방에는 각 도마다 도미술제작소가 있다.
규모와 구성
만수대창작사는 부지면적 12만㎡, 연건평 7만 4,000㎡의 40여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가 1,000여 명, 종사자 2,700여 명이 활동하는 만수대창작사는 북한에서 가장 큰 중앙미술창작기관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미술창작기지이다. 조선화, 유화, 벽화, 출판화, 도자기, 조각, 공예, 금속, 돌, 수예, 보석화, 도안 등 12개의 창작단과 60여 개의 창작실이 있다. 석고상제작단, 동상제작단, 돌공예제작단, 초상휘장제작단, 기념품제작단, 미술기자재제작단 등 8개의 제작단이 미술창작기지를 이루고 있다. 평양에 있는 만수대창작사를 모체로 지방에는 각 도마다 도미술제작소가 있다.
내용
만수대창작사는 1959년 11월 30여 명의 조각가들로 이루어진 중앙미술제작소로 설립되었다. <천리마동상> 제막식을 시작으로 조각가들을 중심으로 한 집체창작에 들어갔으며, 김일성의 첫 방문일인 17일을 창립일로 정하였다. 이후 1960년대 후반 김정일은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활동의 중심지로 종합적인 미술창작집단인 ‘만수대창작사’를 설립하고 확장해 나갔다. 현재는 여러 창작단, 제작단, 미술기자재, 작품보존, 보급을 위한 기술집단, 보장부서 외에 해외전담부서인 만수대해외개발회사까지 두고 있다. 평양미술대학 출신을 중심으로 하여 조선화창작단 소속 미술가만 100여 명이다. 약 1,000여 명의 미술가와 2,700여 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다.
만수대창작사는 1급기업소로서 김일성훈장, 김정일훈장, 국기훈장 제1급, 3중3대혁명붉은기를 수여받았고 김일성훈장, 김정일훈장 수훈자들과 김일성상 계관인, 김정일상 계관인을 비롯해 수십 명의 노력영웅, 100여 명의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 학위학직소유자 등을 배출한 북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집단이다. 상부조직은 사장, 제1부사장, 부사장 4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사장 4명은 각각 조직, 창작, 제작, 보급의 업무를 맡고 있으며 60여 개 창작실에서 10∼20명 단위로 모여 집체창작을 한다. 당위원회는 초급당, 부문당, 세포로 나뉜다. 창작사의 가장 기본부서는 창작국(1창작실, 2창작실), 정보기술국, 해외개발국이 있다.
만수대창작사는 2009년 4월 상설전시와 판매를 위한 전용미술관을 통일거리에 건립하여, 1층에는 미술관과 식당, 2층에는 상점, 지하에는 한증탕과 청량음료점을 냈다. 미술관에서는 조선화, 유화, 보석화, 출판화, 수예, 도자기, 만년화, 공예, 서예 등 45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만수대창작사는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인민상 계관작품인 <천리마동상>(1961)과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1967)을 창작 건립하였고, 1970년대에는 <만수대대기념비>(1972), <왕재산대기념비>(1975), <포평혁명사적탑>(1976), <삼지연대기념비>(1979)를, 1980년대에는 <주체사상탑>(1982년)과 <개선문>(1982), <대성산혁명렬사릉>(1985), <서해갑문기념비>(1986),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1993), 평양지하철역의 벽화, 대극장 대형벽화, 혁명박물관,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을 창작 건립하여 “대기념비 미술창작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고, 북한의 유일사상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김일성, 김정일의 유년기를 소재로 한 그림들은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중심적인 선전선동 역할을 하였다.
만수대창작사는 조선화를 기본으로 미술을 발전시키며, 유화와 같은 미술형식을 ‘우리 식’에 맞게 ‘자력갱생’으로 새롭게 연구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주체문예이론’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수대창작사의 창작활동은 당의 정책과 요구에 맞게 현실체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식의 조선화, 주제화, 풍경화를 제작하고 있다. 또한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인 <태양상>들을 그렸고, 대형조선화 <피눈물의 해 1994년>, 조선화 <항일의 혈전만리>, <백두산천지의 붉은 노을>, <뜻깊은 설날 인민군병사들을 찾으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와 같은 ‘1호 작품’들을 창작하여 당원들과 근로자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 문화정서교양에 주력하였다.
만수대창작사는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지에서 각종 전시회, 예술축전을 개최하여 조선화, 보석화, 조각작품들을 선보이면서 북한미술을 홍보하고 관광상품으로 판매하였다. 특히 2005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국제예술전람회’에서 북한미술-조선화를 알리게 되었다. 해외프로젝트로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보다 1.5배 크기인 브론즈 동상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조형물’을 2010년부터 약 2년에 걸쳐 완공하기도 하였다. 2009년 11월에는 만수대창작사 창립50돌 기념 대규모 전람회가 평양체육관에서 개최되었으며, 이때 ‘국가미술전람회’의 2배 규모에 달하는 전시회가 열렸다. 만수대창작사는 대규모 종합 미술창작기지로서 북한의 당 선전선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내용
만수대창작사는 1959년 11월 30여 명의 조각가들로 이루어진 중앙미술제작소로 설립되었다. <천리마동상> 제막식을 시작으로 조각가들을 중심으로 한 집체창작에 들어갔으며, 김일성의 첫 방문일인 17일을 창립일로 정하였다. 이후 1960년대 후반 김정일은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활동의 중심지로 종합적인 미술창작집단인 ‘만수대창작사’를 설립하고 확장해 나갔다. 현재는 여러 창작단, 제작단, 미술기자재, 작품보존, 보급을 위한 기술집단, 보장부서 외에 해외전담부서인 만수대해외개발회사까지 두고 있다. 평양미술대학 출신을 중심으로 하여 조선화창작단 소속 미술가만 100여 명이다. 약 1,000여 명의 미술가와 2,700여 명의 종업원을 두고 있다.
만수대창작사는 1급기업소로서 김일성훈장, 김정일훈장, 국기훈장 제1급, 3중3대혁명붉은기를 수여받았고 김일성훈장, 김정일훈장 수훈자들과 김일성상계관인, 김정일상계관인을 비롯해 수십 명의 노력영웅, 100여 명의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 학위학직소유자 등을 배출한 북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집단이다. 상부조직은 사장, 제1부사장, 부사장 4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사장 4명은 각각 조직, 창작, 제작, 보급의 업무를 맡고 있으며 60여 개 창작실에서 10∼20명 단위로 모여 집체창작을 한다. 당위원회는 초급당, 부문당, 세포로 나뉜다. 창작사의 가장 기본부서는 창작국(1창작실, 2창작실), 정보기술국, 해외개발국이 있다.
만수대창작사는 2009년 4월 상설전시와 판매를 위한 전용미술관을 통일거리에 건립하여, 1층에는 미술관과 식당, 2층에는 상점, 지하에는 한증탕과 청량음료점을 냈다. 미술관에서는 조선화, 유화, 보석화, 출판화, 수예, 도자기, 만년화, 공예, 서예 등 45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만수대창작사는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인민상 계관작품인 <천리마동상>(1961)과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1967)을 창작 건립하였고, 1970년대에는 <만수대대기념비>(1972), <왕재산대기념비>(1975), <포평혁명사적탑>(1976), <삼지연대기념비>(1979)를, 1980년대에는 <주체사상탑>(1982년)과 <개선문>(1982), <대성산혁명렬사릉>(1985), <서해갑문기념비>(1986),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1993), 평양지하철역의 벽화, 대극장 대형벽화, 혁명박물관,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들을 창작 건립하여 “대기념비 미술창작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고, 북한의 유일사상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였다. 특히 김일성, 김정일의 유년기를 소재로 한 그림들은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중심적인 선전선동 역할을 하였다.
만수대창작사는 조선화를 기본으로 미술을 발전시키며, 유화와 같은 미술형식을 ‘우리 식’에 맞게 ‘자력갱생’으로 새롭게 연구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주체문예이론’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수대창작사의 창작활동은 당의 정책과 요구에 맞게 현실체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식의 조선화, 주제화, 풍경화를 제작하고 있다. 또한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인 <태양상>들을 그렸고, 대형조선화 <피눈물의 해 1994년>, 조선화 <항일의 혈전만리>, <백두산천지의 붉은 노을>, <뜻깊은 설날 인민군병사들을 찾으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와 같은 ‘1호 작품’들을 창작하여 당원들과 근로자들에 대한 정치사상교양, 문화정서교양에 주력하였다.
만수대창작사는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등지에서 각종 전시회, 예술축전을 개최하여 조선화, 보석화, 조각작품들을 선보이면서 북한미술을 홍보하고 관광상품으로 판매하였다. 특히 2005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국제예술전람회’에서 북한미술-조선화를 알리게 되었다. 해외프로젝트로 세네갈 수도 다카르에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보다 1.5배 크기인 브론즈 동상 ‘아프리카 르네상스 기념조형물’을 2010년부터 약 2년에 걸쳐 완공하기도 하였다. 2009년 11월에는 만수대창작사 창립50돌 기념 대규모 전람회가 평양체육관에서 개최되었으며, 이때 ‘국가미술전람회’의 2배 규모에 달하는 전시회가 열렸다. 만수대창작사는 대규모 종합 미술창작기지로서 북한의 당 선전선동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관련어 중앙미술제작소, 집체미술
관련연구(남) 박영정, 『북한 문화예술 현황분석 연구』, 서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참고자료 박영정, 『북한 문화예술 현황분석 연구』, 서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이미지

만수대창작사

이미지명 : 만수대창작사

만수대창작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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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대창작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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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대창작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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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대창작사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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