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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미술대학 [Pyongyang University of Fine Art]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미술
9분류 조직
집필자 안미옥
시기1947년 9월 10일
소재지평양시 동대원구역 랭천 2동
정의
평양미술대학은 1947년 9월 10일 평양미술전문학교로 시작하여, 1949년 9월 16일 국립미술학교로 명칭이 바뀌었고, 1952년 9월에는 평양미술대학으로 승격되었다. 북한미술부문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미술창작기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정의
평양미술대학은 1947년 9월 10일 평양미술전문학교로 시작하여, 1949년 9월 16일 국립미술학교로 명칭이 바뀌었고, 1952년 9월에는 평양미술대학으로 승격되었다. 북한미술부문에서 최고의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미술창작기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고등교육기관이다.
용례/관용구

평양미술대학은 주체예술발전의 요구에 맞게 교수교양사업을 강화하여 주체의 혁명적세계관이 확고히 서고 예술적기량이 높은 능력있는 미술전문가들을 길러낼 사명을 지니고 있다. 『문학예술대사전(DVD)』, 2006.
용례/관용구
“평양미술대학은 주체예술발전의 요구에 맞게 교수교양사업을 강화하여 주체의 혁명적세계관이 확고히 서고 예술적기량이 높은 능력있는 미술전문가들을 길러낼 사명을 지니고 있다.”(『문학예술대사전(DVD)』, 2006).
규모
평양미술대학은 5층짜리에 4개의 건물을 갖고 있다.
규모와 구성
평양미술대학은 5층규모에 4개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
평양미술대학은 미술부문 전문가 양성기지로서 1947년 9월 10일 처음 평양 학생들을 대상으로 평양미술학교로 설립되었다가, 1949년 9월 16일 국립미술학교로 개칭하면서 학생 모집 범위를 전국 단위로 확장하였다. 6.25 전쟁 시기 평안북도 용천군으로 옮겨가면서 1952년에 평양미술대학으로 개칭되었고, 1958년 8월에 현재 위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처음 평양미술학교로 세워졌을 때는 2년제였고 국립미술학교로 개칭되면서 회화과, 조각과, 도안과 등 3개의 과로 3년제로 실시되었다. 시작된 이후 여러 형식으로 많은 학제, 학과, 학부에 변동이 있었지만 현재의 평양미술대학은 전문부 3년, 대학과정 4년 6개월, 2년제 연구원, 3년제 박사원으로 되어있다.
평양미술대학은 조선화학부, 회화학부, 조각학부, 출판화학부, 공예학부, 산업미술학부, 사회과학학부 등 7개의 학부와 30여 개의 학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 일하면서 배우는 통신교육체계와 주체미술연구소, 미술관, 도서관, 교재작품창작실, 실습공장이 있다. 교원체계는 학장, 부학장, 학부장, 강좌장, 교원들로 구성되어있다. 평양미술대학은 특히 조선화 분야의 역량을 강화하여 많은 조선화 전문가들을 배출하였고 김일성상 계관인, 노력영웅,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들을 탄생시켰다. 평양미술대학 졸업생들은 미술계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대형작품 제작에 참여해 천리마동상, 만수대기념비,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등 많은 창작사업에서 한몫을 담당하였다. ‘베이징국제예술전람회’를 비롯하여 국제미술전시회들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김성민, 김승희, 김동환, 선우영, 정영만, 정창모를 비롯하여 보석화의 개척자인 신봉화, 황병호, 윤룡숙 등도 이 대학 출신들이다.
평양미술대학은 미술을 통한 주체사상의 확산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고, 사실주의를 기초로 한 주체미술을 미학적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미술조류인 형식주의나 추상주의는 거부한다. 이런 맥락에서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미술형식을 기초로 한 독특한 화법인 조선화의 계승 발전에 바탕을 둔 기본 장르가 68%를 차지한다.
평양미술대학은 김정일의 ‘주체미술론’을 실천하고 민족적 회화로서의 대표적 기법인 조선화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며, 북한 미술교육계의 심장부 역할을 한다.
내용
평양미술대학은 미술부문 전문가 양성기지로서 1947년 9월 10일 처음 평양학생들을 대상으로 평양미술학교로 설립되었다가, 1949년 9월 16일 국립미술학교로 개칭하면서 학생 모집 범위를 전국 단위로 확장하였다. 6.25전쟁 시기 평안북도 용천군으로 옮겨가면서 1952년에 평양미술대학으로 개칭되었고, 1958년 8월에 현재 위치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처음 평양미술학교로 세워졌을 때는 2년제였고 국립미술학교로 개칭되면서 회화과, 조각과, 도안과 등 3개의 과로 3년제로 실시되었다. 시작된 이후 여러 형식으로 많은 학제, 학과, 학부에 변동이 있었지만 현재의 평양미술대학은 전문부 3년, 대학과정 4년 6개월, 2년제 연구원, 3년제 박사원으로 되어있다.
평양미술대학은 조선화학부, 회화학부, 조각학부, 출판화학부, 공예학부, 산업미술학부, 사회과학학부 등 7개의 학부와 30여개의 학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외에 일하면서 배우는 통신교육체계와 주체미술연구소, 미술관, 도서관, 교재작품창작실, 실습공장이 있다. 교원체계는 학장, 부학장, 학부장, 강좌장, 교원들로 구성되어있다. 평양미술대학은 특히 조선화 분야의 역량을 강화하여 많은 조선화 전문가들을 배출하였고 김일성상 계관인, 노력영웅, 인민예술가, 공훈예술가들을 탄생시켰다. 평양미술대학 졸업생들은 미술계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여 대형작품 제작에 참여해 천리마동상, 만수대기념비,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등 많은 창작사업에서 한몫을 담당하였다. ‘베이징국제예술전람회’를 비롯하여 국제미술전시회들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김성민, 김승희, 김동환, 선우영, 정영만, 정창모를 비롯하여 보석화의 개척자인 신봉화, 황병호, 윤룡숙 등도 이 대학 출신들이다.
평양미술대학은 미술을 통한 주체사상의 확산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고, 사실주의를 기초로 한 주체미술을 미학적 원칙으로 강조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미술조류인 형식주의나 추상주의는 거부한다. 이런 맥락에서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미술형식을 기초로 한 독특한 화법인 조선화의 계승 발전에 바탕을 둔 기본 장르가 68%를 차지한다.
평양미술대학은 김정일의 ‘주체미술론’을 실천하고 민족적 회화로서의 대표적 기법인 조선화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며, 북한 미술교육계의 심장부 역할을 한다.
관련어 평양미술학교, 평양국립미술학교, 평양미술전문학교
관련연구(남) 박영정, 『북한 문화예술 현황분석 연구』, 서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참고자료 박영정, 『북한 문화예술 현황분석 연구』, 서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1.

이미지

평양미술대학

이미지명 : 평양미술대학

평양미술대학2

이미지명 : 평양미술대학2

평양미술대학3

이미지명 : 평양미술대학3

평양미술대학4

이미지명 : 평양미술대학4

평양미술대학5

이미지명 : 평양미술대학5

평양미술대학6

이미지명 : 평양미술대학6

평양미술대학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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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미술대학8

이미지명 : 평양미술대학8

평양미술대학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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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미술대학10

이미지명 : 평양미술대학10

평양미술대학11

이미지명 : 평양미술대학11

평양미술대학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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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미술대학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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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미술대학14

이미지명 : 평양미술대학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