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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만 [Namkung Man]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공연 > 연극인
9분류 인물
집필자 김은정
출생일1915년 11월 6일
사망일1987년 11월 9일
출생지평안남도 강서군
정의
남궁만은 재북 문인으로 극작가이다.
내용
남궁만의 본명은 량춘석으로 1915년 평남 강서군에서 출생하였다. 평양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사범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가정 사정에 의해 중퇴한 후 1929년부터 평양고무공장에서 노동자로 근무하면서, 공장 안의 문예서클에서 연극을 접하였다. 이석진 등과 함께 1934년 평양에서 극단 신예술좌를 조직하였으며, 기림리 노동자 지구에서 공연을 준비하다가 5.1절을 앞두고 경찰에 피검되었다. 1936년 『조선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데릴사위>가 입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후 <산막(山幕)>(1936), <청춘>(1936), <포구>(1936), <토성랑패거리>(1938), <전설>(1941) 등을 발표하였다. 1942년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해방이 되자 평양으로 돌아왔다. 그는 해방 후 북조선 문학예술총동맹 선전부장(1946~1947), 북조선 연극인동맹 서기장 (1947~1948) 등을 역임하면서 희곡 <복사꽃 필 때>(1946), <하의도>(1949), <산하유정>(1947)등의 희곡을 창작하였으며, 6.25 전쟁 시기에는 종군작가로 활동하면서 단막희곡 <화선을 넘어서>(1952)를 비롯한 희곡과 종군기를 집필하였다. 전후에는 조선중앙방송위원회(1953~1958), 희곡창작사(1965) 등에서 창작생활을 하였으며 이 시기 장막희곡 <공산주의자>(1960)를 비롯한 희곡들과 방송극, 수필 그리고 역사소설 등을 집필하였다.
그의 1965년 이후의 행적은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의 『문학예술대사전(DVD)』(2006)은 “오랜 병환 속에서 창작을 계속하다 1987년 사망”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북한은 현실에 민감한 반영과 강한 극성을 그의 극작품의 특성으로 평가한다.
일제강점기 남궁만의 작품을 대표하는 <데릴사위>, <산막>, <청춘>은 주로 농촌이나 도시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하여 꿈을 상실한 인간들의 아픔을 그려내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혁명전통과 관련된 작품을 집필하였다. 남궁만에 대한 북한 자료는 학력 사항과 데뷔작 이 두 가지 문제에서 남한 자료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남한에서는 평양에서 보통학교를 중퇴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북한 자료는 보통학교 졸업 후 서울사범학교에 진학하였으나 중퇴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남한 자료에서는 1936년 『조선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데릴사위>가 입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북한은 평양고무공장 파업투쟁을 그린 희곡 <청춘>(1936)을 낸 후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관련어 조선중앙방송위원회, 희곡창작사
동의어 량춘석, 양춘석
참고자료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4.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원, 2006.

이미지

남궁만

이미지명 : 남궁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