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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균 [Kim Wonkyun]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음악 > 양악 > 작곡가
9분류 인물
집필자 김수현
출생일1917년 1월 2일
사망일2002년 4월 5일
출생지강원도 원산시
정의
피바다가극단 총장,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북한의 음악가이다.
내용
강원도 원산시 상동의 빈농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원산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학비난으로 3학년에서 중퇴하고 노동자 생활을 하였다. 어려운 생활 속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못한 김원균은 일본으로 유학하여 음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가정환경으로 제대로 졸업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귀국한 해방 직후 북조선공산당 평안남도 선전부 미술계장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며 강습생들에게 노래도 지어 가르쳐 주면서 음악가들과 함께 선전대를 조직해 창작한 노래를 가지고 도내의 공장과 농촌에 나가 공연활동을 진행했다. 1946년 평양시음악가동맹 조직부장으로 임명되면서 작곡을 전문적으로 하기 시작하였다.
김원균은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 환영대회'에서 김일성의 연설을 듣고 감동을 받아 김일성을 주제로 한 노래를 작곡하기로 결심하고, 1946년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작곡하였다. 이듬해인 1947년에는 북한의 국가인 <애국가>를 창작하였다. 이밖에도 <조선행진곡>(1945), <투쟁가>(1946), <민주청년행진곡>(1947), <강철의 대오는 전진한다>(1950), <우리의 최고사령관>(1951) 등의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그는 1952년부터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국립음악원에서 유학했고, 유학 기간 <바이올린 소나타>, <현악 4중주>, 교향시 <향토>(졸업작품)를 비롯해 여러 편의 기악소품을 창작하였다. 유학 후 귀국하여 국립예술극장 작곡가, 평양음악무용대학 학장,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피바다가극단 총장 겸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국제음악이사회 명예위원, 조선민족음악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가요 <빛나라 청봉숙영지>(1960), <원쑤의 가슴팍에 불을 지르자>(1964), <영광 빛나라 조선로동당>(1980), 동요 <아버지 원수님께 영광드려요>(1966) 등 수많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또한 그는 1970년대에 <피바다>식 혁명가극 창조사업에 공헌하였다. 1957년 공훈예술가 칭호를 받았고, 1972년 김일성상 계관인,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1986년 노력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많은 훈장과 메달을 수훈하였다. 1997년 3월 평양에서 첫 개인음악회를 개최하기도 하였고, 말년에는 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고문으로 활동했다. 묘지는 애국열사릉에 있으며, 2004년 4월 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분리 독립한 평양음악대학은 2006년 6월 27일자 정령을 통해 그의 이름을 따서 김원균명칭 평양음악대학으로 개명되었다.
관련어 피바다가극단, 조선음악가동맹, 공훈예술가, 인민예술가, 노력영웅, 김일성상
관련연구(남) 전영선, 「북한의 대표적 작곡가·정치가 김원균」, 『북한』, 1월호, 1998.
참고자료 전영선,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예술인들』, 서울: 역락, 2004.
백과사전출판사 편, 『조선대백과사전 1-29』,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2001.
백과사전출판사 편, 『조선대백과사전: 색인』,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2004.
백과사전출판사 편, 『조선대백과사전: 간략본』,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2004.

이미지

김원균

이미지명 : 김원균

김원균2

이미지명 : 김원균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