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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Kim Kitok]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음악 > 양악 > 지휘자
9분류
인물
집필자
김수현
출생일
1921년 1월 11일
사망일
1991년 12월 8일
출생지
함경북도 회령군
정의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이자 국립교향악단과 만수대예술단 지휘자, 단장으로 활동한 북한의 음악가이다.
내용
김기덕은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가난한 농민의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음악에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었던 그는 17살 때 외국으로 가서 음악학교에서 첼로를 배웠으며 지휘공부도 하였다. 1945년 11월부터 북조선음악동맹 함경북도위원회 위원장, 함경북도관현악단 지휘자, 국립교향악단 단장과 지휘자, 평양음악무용대학 작곡학부 지휘강좌장, 만수대예술단 지휘자, 단장으로 활동하였다. 이 시기 그는 관현악 <농촌의 봄>, <봉화>(1948), <보리타작>(1953), <경축서곡>(1962), 교향시 <승리를 향하여>(1952), <조국을 위하여>(1955), <향토>(1958), <항거의 불길>(1960), <서광>(1964), 바이올린협주곡 <용광로가 보이는 바다가에서>(1956)를 비롯한 기악작품들과 세계 클래식 기악작품들을 지휘하여 당시 개척해나가던 교향악 분야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또한 <압록강>, <조선은 싸운다>를 비롯한 수많은 교성곡들과 가극, 무용극의 음악들도 지휘 형상하였다. 특히 만수대예술단의 지휘자, 단장으로 있던 시기(1969~1981) 여성기악중주와 무용음악을 비롯한 많은 기악음악을 지휘 형상함으로써 기악음악분야에서 “종래의 낡은 틀을깨고 명곡에 기초한 기악음악을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62년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고, 국기훈장 제1급과 로력(노력)훈장을 비롯한 많은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말년에는 만수대예술단 고문부단장으로 활동했다. 묘지는 애국렬사릉에 있다.
관련어
만수대예술단
,
인민예술가
,
노력훈장
,
국립교향악단
,
평양음악무용대학
참고자료
리철우, 「북에서 활동하는 재일동포 출신 음악가들」, 『민족21』, 9월호, 2001.
백과사전출판사 편, 『조선대백과사전 1-29』,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2001.
백과사전출판사 편, 『조선대백과사전: 색인』,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2004.
백과사전출판사 편, 『조선대백과사전: 간략본』, 평양: 백과사전출판사, 2004.
이미지
김기덕
이미지명 : 김기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