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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화 [Kim Pyonghwa]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음악 > 양악 > 지휘자
9분류 인물
집필자 김수현
출생일1936년 5월 10일
사망일생존
출생지일본 오사카
정의
조선국립교향악단 지휘자와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음악가이다.
내용
김병화는 1936년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9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음악과 인연을 맺었으나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으로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재일조선인총련합회(총련) 산하 효고(兵庫)현 고베(神戶)조선고급학교를 중퇴하고 생활을 위하여 여러 직업을 전전하였다.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음악을 공부하고자 했던 김병화는 그후 대학에 진학하여 음악을 전공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일본으로의 귀화문제가 걸려 진학의 꿈은 좌절되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운데서도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도쿄(東京)에 있는 음악전문학교에서 음악공부를 이어 나갔다. 김병화는 마침내 도쿄에서 열린 음악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면서 일본 음악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일본에서 음악활동을 하던 김병화는 1960년에 북송선을 탄다. 북한에 들어간 김병화는 처음 국립예술극장에서 피아노 연주가로 활동을 시작하였고, 3년이 지난 1963년부터 지휘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음악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은 김병화는 1969년 북한 최고의 클래식 연주단체인 조선국립교향악단으로 자리를 옮겨 지휘자 겸 작곡가로서 활동하였다. 김병화는 가극을 교향곡으로 옮긴 교향곡 <피바다>를 비롯하여 교향곡 <한 자위단원의 운명>, 그리고 음악무용서사시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의 음악을 담당하면서 작곡가로서 이름을 높였다. 뿐만 아니라 김병화는 지휘자로서 능력을 발휘하여 윤이상의 작품인 <교향곡 제1번>, <클라리네트협주곡>, <무악>을 비롯하여 차이코프스키와 라벨 작품의 지휘를 맡아 명성을 날렸다. 1989년 국립교향악단 수석지휘자를 거쳐 1992년에는 국립교향악단 수석책임지휘관 자리에 올랐다. 2000년 8월 서울에서 열린 KBS교향악단과 남북합동공연에서 지휘를 맡기도 했다. 김병화는 총보 독보 능력, 작품 파악 능력이 탁월하고, 작품 형상 속도가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병화의 작곡 범위는 관현악을 비롯하여 협주곡, 가요, 무용곡, 영화음악 등 장르의 구분없이 다양하다. 교향곡 <피바다>(1973년)를 비롯하여, <내 고향의 정든 집>, <그네 뛰는 처녀>,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등 여러 편의 관현악곡을 비롯하여 관현악 <내 고향의 정든 집>, <그네 뛰는 처녀>, <문경고개>, <아리랑>, <도라지>, <눈이 내린다>, <전호속의 나의 노래>, 피아노협주곡 <조선은 하나다>, <결전의 길로>, 바이올린 협주곡 <사향가>, 가요 <만수대언덕에 노을이 피네>, <우리 대에 통일만세 부르자>, 무용곡 <고난의 행군>, <전사와 할아버지>, 혁명가극 <금강산의 노래>, 예술영화(극영화) 음악 <누리에 붙는 불>,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등의 작품이 있다. 1980년대 중반 인민예술가 칭호를 받았다.
관련어 국립교향악단, 인민예술가
관련연구(남) 전영선, 『북한을 움직이는 문학예술인들』, 서울: 역락, 2004.
참고자료 리철우, 「북에서 활동하는 재일동포 출신 음악가들」, 『민족21』, 9월호, 2001.
월간화보 『조선』, 8월호,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