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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실효투쟁 [campaign to follow the example of the hero of a film]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9분류 행사
집필자 오양열
시기1950년대 추정
개최장소직장, 영화관, 군중문화회관 등 공공장소
정의
주민들로 하여금 영화의 주제사상을 내면화하고 생활화하도록 하기 위해 영화 감상 후 갖는 ‘영화주인공 따라 배우기’ 모임이다.

내용
김정일, 김일성 생일 행사기간 등에 개최하는 ‘영화상영순간’ 종료 직후나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에 대해서도 ‘영화실효투쟁’을 전개한다.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가 주도하는 주체적 문예사상(미학사상) 연구모임이 전문가 중심의 토론회인데 비해, 영화실효투쟁은 모든 노동자들과 일꾼들을 대상으로 한 전사회적, 전당적으로 진행되는 대규모 사상사업이다. 영화예술이 아닌 가극, 경희극(예컨대<산울림>) 등 타 장르 감상 후에도 작품을 통해 사상적으로 깨우친 내용을 실제 생활에 적용, 효력을 보기 위해 결의를 다지는 ‘실효모임’을 갖기도 한다.
영화실효투쟁의 목적은 대중들이 영화학습을 통하여 배운 지식과 사상을 자기 사업과 생활과 결부하여 분석해 보고 '총화(평가)'하여 그것을 통하여 교훈을 찾게 하는데 있으며, 그에 기초하여 새로운 투쟁의욕과 신심을 가지고 일에 달라붙게 하여 사상에서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게 한다는 데 있다. 영화실효투쟁의 목적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명의의<전국영화보급일군대회 참가자들에게>라는 축하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영화실효투쟁은 대중 속에 영화의 주제사상을 실생활과 결부하여 깊이 있게 인식시키며, 영화의 주인공들의 긍정적 모범을 일반화하여 대중의 혁명화를 다그치는 힘 있는 사상교양방법이다.” (『조선영화년감』, 1990)
1962년<붉은 선동원>상영 후 영화실효모임을 가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1950년대부터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 신상옥 감독(1926년~2006년)은 수기에서 영화실효투쟁의 실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하고 있다.
“어느 곳을 막론하고 모두가 조직(단체) 및 직급별로 영화 학습조를 만들어 일정한 시간에 영화를 빠짐없이 학습해야 한다. 영화 보는 것은 감상이 아닌 학습이고 개개인에게 주어진 의무다. 한 편의 영화를 학습하고 나면 학습 조별로 그 영화에 나온 모델을 놓고 토론을 벌이면서 영화 주인공들의 생활과 자기들의 생활을 비교, 반성하면서 새로운 결의를 다진다. 또 영화에서 주요 대사를 뽑아 엮은 명대사 수첩과 영화 주제가를 수록한 주제가 수첩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직장별로 대사 외우기, 주제가 부르기 시합을 시켜 우수 팀이나 개인에게 포상, 서로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영화실효투쟁의 방법에는 몇가지가 있다.

첫째, 영화실효모임을 조직하는 것이다. 예컨대<붉은 선동원>(1962),<불사조>(1963),<붉은 꽃>(1963),<정방공>(1963)을 대상으로 영화실효모임을 조직하여 영화실효투쟁을 전개한 경우이다.
둘째, ‘지정영화’를 정하는 방법이다.<이 세상 끝까지>(1977)의 경우와 같이 모든 영화관과 TV에서 ‘지정영화’만을 상영 및 방영하고 ‘영화해설문’과 함께 학습하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영화 주인공 따라 배우기 운동이다. 영화실효투쟁은 영화에 나오는 긍정적 주인공을 따라 배우는 과정을 통하여 당의 긍정적 감화교양방침을 구현하는 방법이다.
이 밖에도 영화의 밤, 영화창조성원들과의 상봉 모임, 발전하는 현실에 맞게 영화의 주제사상과 내용을 옳게 체득하기 위한 영화감상모임, 영화의 긍정적 주인공들의 모범을 생활에 옮기기 위한 충성의 결의모임 등이 있고, 출판보도물을 통한 지상토론, 구두 선전에 의한 실효투쟁, 직관물을 통한 실효투쟁, 영화주제가와 명(名) 대사를 통한 실효투쟁, 영화감상문을 이용하는 실효투쟁 등 다양한 방법과 형식들이 있다.

영화실효투쟁은 주로 영화보급일꾼들이 토론자료를 활용하여 지도한다. 과거에는 토론자료로 월간『조선영화』를 이용하기도 했다. 『조선영화』는 1957년 7월~1968년, 1985년~1997년 10월 사이에 발간됐으며, 폐간 후『조선예술』에 통합되었다.
영화실효투쟁 과정에서 영화보급일꾼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명의의<전국영화보급일군대회 참가자들에게>라는 축하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화보급일군들은 우리 당이 독창적으로 제시한 영화실효투쟁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사업을 힘 있게 벌려 근로자들 속에서 영화의 주인공을 따라 배우는 운동을 적극 추동하고 그들의 사상정신생활과 혁명실천에서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게 하였다.’(『조선영화년감』, 1990)
김정일은<당사상사업의 요구에 맞게 영화보급사업을 개선 강화할 데 대하여>(1978년3월8일 전국영화보급부문 일군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영화실효투쟁의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영화보급일군들은 바로 우리의 혁명적 영화예술을 근로자들에게 제때에 기동적으로 보여주며 그들이 영화의 주인공의 모범을 따라 배워 자기의 생활을 끊임없이 개변해나가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영화보급사업에서 영화실효투쟁은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근로자들이 영화를 보고 배운 것을 자기 사업과 결부시켜 분석하면서 교훈을 찾고 새로운 투쟁의욕과 심심을 가지고 일에 달라붙게 하는 영화실효투쟁은 우리 당이 내놓는 독창적인 영화보급방침의 하나입니다. 실천적 경험은 영화실효투쟁이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각성시키고 불러일으키는데서 커다란 작용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 신상옥 감독은 수기에서 ‘웃기는 영화실효투쟁’이라는 소제목 하에 영화실효투쟁에 대해 ‘넌센스 코미디’, ‘우민정책의 극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영화를 하나의 오락이나 흥미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온 국민이 의무적으로 본 뒤 ‘우리도 저 영화의 주인공처럼 행동하고 살아가자’고 가정과 직장에서 법석을 떠는 넌센스 코미디가 오늘날 북한 사회에서 하등 이상하다는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다. ‘영화실효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우민정책의 극치가 아닌가 싶다."
동의어 ‘영화주인공 따라 배우기’
관련자료(북) 장정춘,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의 문학예술업적 11-군중문학예술의 찬란한 개화』,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4.
참고자료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편, 『북한 문화·체육시설 총람』, 서울: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10.
신상옥·최은희,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 서울: 월간조선사, 2001.
이춘길 외, 『북한의 영화산업 현황과 영화진흥정책 연구』, 서울: 한국문화정책연구원, 1997.
문학예술종합출판사 편, 『조선영화년감』,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