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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족음악무용연구소 [Korean National Music and Dance Research Institute]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음악 > 민족음악 > 공통
9분류 조직
집필자 천현식
시기1960년 4월~현재
정의
민족음악무용자료를 연구·보존하고 계승·발전시키는 사업을 진행하는 연구소이다.
용례/관용구
조선민족음악무용연구소는 민족음악무용자료들을 연구,보존 및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통일적으로 진행하는 나라의 믿음직한 예술연구기지이다. 『로동신문』, 2006년 5월 26일.
규모와 구성
조선민족무용연구소는 민족음악리론연구실, 무용연구실 등의 각 부문 연구실로 구성되어 있다. 확인되는 연구원들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박형섭, 2005년부터 김두일 소장등이다. 그리고 2006년 무용연구실장으로는 김수옥이 확인된다. 이 밖에 한휘국(2001년 실장)과 배우 왕수복이 연구원으로 활동하였다.
내용
민족문화유산 중 민족음악무용자료들을 연구·보존하고 계승·발전시키는 사업을 진행하는 거점 연구소이다.
『로동신문』 2006년 5월 26일자에 따르면 조선민족음악무용연구소의 창립을 1946년 5월 26일자로 밝히며 창립 60주년 기념보고회를 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 최초의 민족음악단체인 조선고전악연구소가 1947년 4월에 창립되었던 것이 확실해 조금 더 확인이 필요하다. 그것보다 이 연구소가 1947년 창립된 조선고전악연구소가 국립예술극장을 거쳐 1950년대 국립민족예술극장으로 성격이 변하면서, 이후 1960년 4월 창립된 민족음악연구소를 잇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민족음악연구소는 당시 민족문화유산 사업에 따라 음악 분야의 연구소로 창립되었다. 이 민족음악연구소가 기존의 조선고전악연구소의 연구 기능을 잇게 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민족음악무용연구소는 민족음악과 민족무용의 현대성과 민족성을 조화시켜 결합시키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발굴, 연구를 위주로 하지만 출판과 공연도 함께 하고 있다.
발굴사업은 해마다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그 중 2005년을 보면 음악 무용작품 120여 편을 발굴하였다. 100여 편이 음악작품이고, 20여 편은 무용과 춤가락이었다. 연구 기반의 출판 사업으로는 『해방후 조선민요발전』과 『민속음악상식』, 『민요창법해설』, 『계몽기가요 600곡집』 등을 편찬하였다. 그리고 평양음악무용대학, 윤이상음악연구소 민족음악연구실과 함께 진행한 민요 발굴사업에 따른 출판사업이 주목할 만하다. 《조선민족음악전집》(전 34권), 《조선민요연구자료》(전 9권), 《조선노래대전집》(민요편) 등이 그것인데, 이들을 모으면 모두 8천 여곡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2006년에는 민속음악 작품들과 용어, 인물, 자료 등 1500여 등재단어를 수록한 『민족음악사전』 (DVD포함)을 발행하였다. 드물지만 공연도 개최하고 있다. 2005년 9월에는 평양 윤이상음악당에서 민족음악무용 ‘우리민족 제일일세’를 열었다. 그리고 2006년에는 무용가 최승희의 춤을 발굴해서 공연에 올렸다.
조선민족음악무용연구소는 민족음악과 민족무용의 발굴과 연구에 머물지 않고 북한 문학예술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현대화에 초점을 맞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것이 주로 보존에 치우쳐 있는 남한의 전통 문화예술 사업과 다른 점이다. 조선민족음악무용연구소의 사업 소개를 보면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조선민족음악무용연구소에서 우리 민족이 창조한 민족문화 유산들을 역사주의적 원칙에서 발굴, 정리하고 시대적 미감에 맞게 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 2005년 12월 26일). 이와 같이 민요와 민속춤을 발굴하고 채록, 연구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민족의 유산을 중심으로 현대 인민대중들의 생활과 미감에 맞는 예술을 재창작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관련어 민족음악연구소, 한휘국, 김두일
동의어 민족음악무용연구소
참고자료 리히림 외, 『해방후 조선음악』, 평양: 문예출판사,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