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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병 [Scout]

상세 정보 표
분야 장르별체계관리 > 영상 > 영화 > 예술영화
9분류 작품
집필자 이명자
시기1953년
제작자전동민 연출, 국립영화촬영소
정의
북한의 군사정탐물 주제의 첫 영화이다.
내용

<정찰병>은 전쟁의 4단계에 들어선 현실에서 기록영화와 함께 사상 예술성이 높은 혁명적인 예술영화들을 적극 만들라는 1952년 8월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제작되었다. 김일성은 정찰병의 생활을 잘 모르는 영화인들에게 원형 인물인 공화국 2중 정찰 영웅을 군사고문으로 파견하여 주었다고 한다. 6.25 전쟁 시기 정찰병의 활약상을 베테랑인 학철의 관점에서 보여주며 혁명적 동지애와 반제국주의를 고취시키는 영화이다.
영화는 부산 인근에서 정찰병들의 전쟁 중 임무와 활동을 주요 내용으로 하며 정찰과장 학철과 신입대원 경술 사이의 연대와 믿음, 우정을 서브플롯으로 보여준다.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과거와 같이 전면 정찰은 성과가 없으니 적 후방을 정찰하라는 임무를 맡은 리학철은 대원들과 함께 적 후방으로 침입해 정보를 캐낸다. 학철은 적의 특별 군용도로의 비밀을 캐내고 대낮에 적의 지휘부를 기습하여 미 고문관의 작전지도를 탈취하며 적의 105mm 포 진지를 습격하여 인민군의 승리를 돕는다. 이 과정에서 학철과 대원들 사이의 혁명적 동지애가 돋보인다.
학철은 신입 대원 경술에게 모든 것은 ‘사상이 강하면 극복’할 수 있다며 인민군대의 무기는 총검만이 아니며 ‘우리 전사들의 고상한 정신 상태와 지휘관들의 전술적 우수성’을 믿자고 정신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리학철 역은 월북 배우인 박학이 열연하였으며 이 영화가 나온 이후 북한의 많은 청소년들이 서로 정찰병이 되겠다고 지원하였다고 한다. <정찰병>은 ‘군사정탐물의 영화창작의 출발점’을 마련한 영화이자 ‘조국해방전쟁기에 나온 대표적 성과작’으로 평가받는다.
관련어 전동민, 국립영화촬영소
관련연구(남) 이명자, 「한국전쟁 전후 시기, 남북한의 냉전이데올로기 영화에 재현된 근대화담론의 비교」, 『한민족문화연구』, 40집, 2012.
관련자료(북) 소희조,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 밑에 창조된 예술영화 <정찰병>」, 『조선예술』, 7호, 1999.
장명욱, 「인민군대의 영웅성과 용감성을 보여준 예술영화 《정찰병》」, 『조선영화』, 6호, 1987.
장명욱, 「영화의 력사를 거슬러: 인민군대의 영웅성과 용감성을 보여준 예술영화 <정찰병>」, 『조선영화』, 6호, 1987.
참고자료 리호윤, 『조선영화문학선집 1』,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판부, 1994.
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 편, 『문학예술사전』,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72.
사회과학원 편, 『문학예술대사전(DVD)』, 평양: 사회과학원, 2006.
백과사전종합출판사 편, 『광명백과사전』, 평양: 백과사전종합출판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