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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면상 [Ri Myonsang]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음악 > 공통 > 작곡가
9분류 인물
집필자 배인교
출생일1908년 4월 8일
사망일1989년 6월 25일
출생지함경남도 함흥시 화상구역 동흥리
정의
일제시대부터 활동한 대중음악작곡가이자 오랜 기간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용례/관용구
당시 <포리톨>레코드제작사의 전속작곡가로 있던 리면상은 김안서가 작사한 <꽃을 잡고>라는 가사에 민요식의 곡을 붙여 선우일선의 창으로 레코드취입에 넘기면서 동료작곡가들의 의견을 받아 전통적인 민요와 구별할 목적에서 새 <신>자를 첨부하여 <신민요>라는 쟌르적명칭을 달았다. 장영철, 「(론설) 신민요의 형성발전과 그 음악사적의의」, 『조선예술』, 제3호, 1992.
내용
1916년 4월부터 1925년 3월까지 함흥의 사립덕흥학교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4월부터 1930년 3월까지 원산의 제2보통학교 교원으로 일하였다. 1930년 3월 일본 도쿄의 음악학교에 유학하였으나 2년만에 퇴학당하였다. 재학 당시 일본 프롤레타리아음악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1933년부터 폴리돌과 빅타레코드의 전속 작곡가로 있으면서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였다. 해방 이후 1945년 10월부터 함경남도음악건설동맹 위원장으로, 1947년 1월부터 사망한 1989년 6월까지 해방후 40년이 훨씬 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조선음악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였다.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귀국후 발표한 <뻐꾹새(포곡성)>로 이름을 얻었으며, <꽃을 잡고>, <울산타령>을 히트시키면서 신민요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다. 해방 이후의 대표적인 가요 작품으로는 <소년단행진곡>, <빛나는 조국>, <조국보위의 노래>, <압록강 이천리>, <눈이 내리네>, <영광의 땅 보천보>, <어머니 당이여> <끝없는 이 행복 노래부르네> 등이 있다.
리면상은 북한의 음악예술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공훈예술가(1955), 인민상 계관인(1958), 인민예술가(1961) 칭호를 받았으며, 1972년에는 김일성상 계관인이 되었다. 또한 1988년 4월 모란봉 지상극장에서 그의 80회 생일을 기념하는 ‘리면상 음악회’가 개최되었다.
리면상은 남한에서 일제시대의 친일 작곡가로, 그리고 대중음악 작곡가로 알려져 있으나 북한에서는 북한의 가극 형성과 음악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있다고 평가한다.
관련어 대중음악, 공훈예술가, 인민예술가, 인민상, 김일성상, 리면상음악회
동의어 이면상, 李冕相
관련연구(남) 이소영,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혼종성 연구」, 박사학위논문, 한국학중앙연구원, 2006.
정서은,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음악사학적 접근: 작곡자 이면상을 중심으로」, 『한국음악사학보』, 30집, 2003.
최창호, 『민족수난기의 대중가요사』, 서울: 일월서각, 2000.
관련자료(북) 함덕일, 「(해빛과 영생) 작곡가 리면상의 창작활동과 개성적특성」, 『조선예술』, 1호, 1996.
함덕일, 「(해빛과 영생) 은혜로운 당의 품속에서」, 『조선예술』, 2호, 1996.
함덕일, 「(해빛과 영생) 은혜로운 당의 품속에서 (2)」, 『조선예술』, 3호, 1996.
함덕일, 「(해빛과 영생) 은혜로운 당의 품속에서 (3)」, 『조선예술』, 5호, 1996.
함덕일, 「(해빛과 영생) 작곡가 리면상의 창작활동과 개성적특성: 음악형상과 창작적개성 (2)」, 『조선예술』, 6호, 1996.
함덕일, 「(해빛과 영생) 작곡가 리면상의 창작활동과 개성적특성: 음악 형식과 양상의 새로운 탐구 (3)」, 『조선예술』, 7호, 1996.
문성렵, 『력사에 이름을 남긴 음악인들 (2)』, 평양: 사회과학출판사,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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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면상

이미지명 : 리면상

리면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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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면상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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