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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보 [Kim Kwanpo]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음악 > 민족음악 > 성악가
9분류 인물
집필자 배인교
출생일1921년 4월 15일
사망일미상
출생지평안남도 성천군(당시 회창군) 대곡리
정의
북한의 민족성악 가수이자 여성 교육자이다.
용례/관용구
김관보는 그날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뜨거운 마음으로 새겨 안으며 새조선의 민요가수로서 노래와 함께 민주조국건설에 떨쳐 나선 인민들을 투쟁와 위훈에로 고무추동하는 가수가 될 결심을 굳게 다졌다. 장영철, 『조선음악명인전』, 2000.
내용
김관보는 1935년 서울에 있는 가무양성소에 들어가 민요와 장고, 가야금을 배웠다. 수학 중에 부민관에서 열린 명창대회에서 <창부타령>과 <골망태목동>을 불러 1등을 하였다. 1945년 9월에 평남이동예술대 단원이 되어 예술활동을 하였으며, 그의 스승인 김진명, 해금명인 류대복과 함께 평양의 한일가무단에서 활동하였다. 1949년부터는 조선고전악연구소 민요독창가수로, 6.25 전쟁 시기에는 국립예술극장 민요가수로 있으면서 인기를 얻었다. 1957년 8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서 민요 <룡강기나리>를 불러 금메달을, 축전무대에서 가무 <어랑타령>에 대한 지도상을 받았다. 또한 이 시기에 창극 <배뱅이굿>의 배뱅이, <장화홍련전>의 장화, <강건너마을에서 새노래 들려온다>에서 주인공인 여성관리위원장 봉화역을 맡아 수행하였다. 1962년부터는 평양음악대학 민족성악강좌 교원으로 후진양성에 힘썼다. 1990년대에는 ‘범민족통일음악회’,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에서 공연하였으며, 평양음악무용대학 성악학부 고문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98년 11월에는 윤이상음악당에서 ‘공훈배우 김관보독창회’를 갖기도 하였다.
1957년 제6차 세계청년학생축전 금메달 수상을 계기로 공훈배우가 되었으며, 로력(노력)훈장 등을 받았다. 일제시대 기생가수 중 한 사람이며 조령출(조명암)의 부인으로 1930~1940년대 우리 대중가요의 대표적인 작사가였던 조령출의 저작권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 바 있다. 그는 리면상과 활동했던 평양권번출신의 왕수복이나 선우일선을 제치고 북한 민족성악의 모범으로 활동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어 서도민요, 공훈배우
동의어 金官寶
관련자료(북) 장영철, 『조선음악명인전』, 평양: 윤이상음악연구소, 2000.

이미지

김관보

이미지명 : 김관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