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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준 [Kim Kyongchun]
상세 정보 표
분야
인물별체계관리 > 미술 > 작가 > 회화 > 선전화
9분류
인물
집필자
박계리
출생일
1910년 1월 14일
사망일
1975년 5월 11일
출생지
함경북도 명천군 하우면 읍내동 (현 명천군 읍내리)
정의
김경준은 선전화를 주로 그린 유화 화가이다.
내용
1918년 명천보통학교에 입학, 1925년 서울 경신학교에 입학했으나 2년 후 퇴학당했다. 고향에서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며 미술가와 교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29년 일본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하여 재학 중에 그린 그림으로 개인전을 개최했다. 1934년 졸업 후 중앙일보사에서 삽화를 그리고 미술평론을 썼다. 일제에 의해 신문이 폐간된 후 고향에서 지내며 창작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사회운동에 참여했다. 1946년 3월 미술동맹의 조직부장으로 <청총기> 도안을 그리는 등의 활동을 했다. 비밀조직운동으로 인해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석방 이후 1947년 말 월북하였다. 1948년부터 1952년까지 북조선인민위원회 선전국 군중문화지도과장, 문화선전성 문화국장, 이후 1956년까지 평양미술대학에서 교무부학장으로 재직하였다. 1949년 문예총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제3차 대회, 1951년 문예총 제4차 대회에서 문예총 상무위원으로 활동했다. 1951년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이었다. 평양미술대학 재직 중 1955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년 간 100여 점의 습작을 그렸는데 유화 <어항의 아침>(1955), <압록강상류 합수처>(1958)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북한 미술계에서 평가하는 김경준의 본격적인 작품활동은 1957년 말부터 이루어졌다. 1959년에 곽흥모, 유환기와 그린 <사회주의 높은 봉우리가 보인다, 5개년 계획을 금년 중으로>, 1962년 전의남과 합작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의 날> 등 20여점의 선전화를 남겼는데 대부분 합작품이다. 김경준의 선전화는 다수가 미술가들과의 합작이었다. 그의 작품 유화 <소낙비 그친뒤>(1958), <압록강상류 합수처>와 선전화들이 조선미술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관련어
평양미술대학
,
선전화
,
조선미술박물관
관련자료(북)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참고자료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 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